당신의 "띠"는 무슨 색인가요?
12월 마지막주 금요일에는 오랜만에 청림유도관에 다녀왔다. 관장님과 사범님께 2025년 연말 인사도 드리고 싶었고 마침 그 주에는 회사 송년회며 저녁 일정 등으로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기에 몸이 근질근질한 참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도장은 깔끔하게 내부 인테리어 작업을 해서 더없이 아늑했다. 여름에 다쳤던 무릎을 회복중이라는 핑계로 대련도 두어 판 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2025년의 마지막 땀방울을 개운하게 쏟아냈다. 흰띠를 매고서 너무나 감각있게 몸을 쓰는 여자분과 한판 잡고, 혀를 내둘렀다. 나는 흰띠 때 이렇게 유려하게 대련 하지 못했는데!
운동을 마치고 다같이 태극기를 향해 띠 별로 맞춰서서 도복을 고쳐 맬 때, 사범님이 다가와 검은띠 열의 맨 뒤에 서 있던 나를 끌어당겨 가장 오른쪽 끝열로 밀어 세우셨다. “너 4단이잖아.” 하필 그날은 고단자 분들이 자리에 안 계셨던 모양이다. 고단자라고 할 만한 실력이 되지 못하는데, 열을 맞춰 선 관원들이 홀로 선 나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언제 여기까지 밀려 왔던 걸까. 간절히 노란띠를 염원하던 오래 전의 내가 떠올랐다. 십여 년 전의 나는 이 대열의 가장 왼쪽, 흰띠들의 대열에 서 있었다.
우리 색깔로 말해요
초등학생 때는 누가 태권도 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으레 “너 띠 무슨 색인데?”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태권도의 급수 체계를 잘 모르지만 일단 검은띠라고 하면 마냥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자칭 검은띠라는 아이들도 우쭐해했으니까. 태권도처럼 유도에도 검은띠 이전에 여러 색깔 띠가 존재한다. 도장마다 색깔 체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십여 년쯤 청림유도관을 기준으로 얘기해보자면 흰띠-노란띠-초록띠-파란띠-밤띠-밤띠-검은띠 순서였다. (당시에는 밤띠를 두 번 거쳤다. 이후에 다른 도장들을 다니며 보니 중간에 밤띠를 두 번 거치는 게 아닌, 보라띠-밤띠-검은띠로 이어지는 곳들도 있었다. 요즘은 어디선가 주황띠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컬러풀한 세상이다.)
이렇게 색깔을 나누어 띠를 매고 있으면 대략 이 입문자가 어느 정도의 수련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띠의 단계에서 배우는 기술들이 정해져 있어서 매달 도장 내에서 띠별로 승급 심사를 치렀다. 나의 유급자 시절에는 띠별로 매달 익혀야 할 메치기 기술 한 가지, 굳히기 기술 한 가지씩이 정해져 있었다.(각 급수에 배우는 기술은 도장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흰띠는 낙법을 기본적으로 제일 먼저 배우고, 메치기는 ‘한팔 업어치기’, 굳히기는 ‘곁누르기’를 배우고 이를 잘 익혀 승급 심사를 본다.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여 다음달 노란띠가 되면 이제 메치기는 ‘허리 껴치기’, 굳히기는 ‘가로 누르기’를 배우고 또 그달의 마지막주에 승급 심사를 치르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유도를 시작하면 한달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첫째 주에 기술을 처음 배우고, 어색하게 분절된 동작으로 ‘하나, 둘, 셋’을 중얼거리며 익히기를 반복한다. 둘째 주, 셋째 주 즈음이 되면 세 단계로 나누어 들어가던 동작이 두 단계, 또는 한 호흡이 되어 있고 메치기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어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대망의 넷째 주 심사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내가 한창 유색띠였던 시절의 청림유도관은 지금과는 다른 건물의 지하실에 있는, 좁고 낡은 도장이었다. 승급 심사날이 되면 검은띠 선배님들이(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보다 어린 십대 동생들이었다.) 창고에서 ‘청림유도관 승급 심사’라고 적힌 오래된 현수막과 조립식 테이블을 꺼냈다. 벽의 태극기 아래에 현수막을 단단히 걸고, 조립식 테이블을 벽쪽에 펼쳐서 그 위에 부드럽고 묵직한 붉은색의 벨벳천을 덮었다. 책상 뒤로는 접이식 의자 두 개가 놓였는데, 그곳에는 우리 관장님과 유도계에서 뭔가 굉장해보이는 분이 함께 나란히 앉으셨다. 그날 우리를 심사해주실 심사위원이신 것이다.
그렇게 선배님들 일부가 도장을 단장하는 동안, 심사를 볼 유색띠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매트 위에서 계속 그날 시험 볼 기술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심사 직전까지 검은띠 선배들이 자세 교정을 해주기도 하고 한바탕 부산을 떨다보면 어느새 장내가 고요해지며 심사가 시작됐다. 띠별로 맞춰서서 심사를 봐주실 관장님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예를 갖추고, 관원들은 벽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흰띠부터 밤띠까지 급수 별로 나와서 낙법, 메치기, 굳히기를 선보이고 대련 심사까지 봤다. 이때 당연히 심사를 보는 당사자에게는 ‘받기’를 해 줄 상대가 필요한데, 이 역시 검은띠 선배님들이 나와서 체격을 비슷하게 맞추어 잡아주셨다.
평소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였음에도 ‘승급 심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이 정말 컸다. 긴장감에 얼어붙어서 평소에 연습하던 것보다도 더 어설프고 딱딱하게 메치기를 선보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검은띠 선배님들이 훌륭하게 공중회전낙법에 가까운 ‘받기’를 해주셨다.(개떡 같이 메쳐도 찰떡 같이 넘어가 주셨다는 말이다.) 현란하게 낙법을 치고 내 앞에 의젓하게 누운, 어린 검은띠 선배의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면 ‘고맙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검은띠, 본격적인 시작의 색
첫 승급이었던 만큼 흰띠에서 노란띠가 되었던 순간이 가장 기뻤던 것 같다. 매달 찾아오는 승급 심사는 정적이던 내 삶에 정기적인 월별 과제이자 도파민이 되어 주었다. 고작 한 달만에 배운 기술을 얼마나 완벽히 소화해냈겠냐마는, 그때 메치기와 굳히기 기술을 차근히 배워둔 덕분에 검은띠가 된 뒤에 각 기술을 하나, 하나 벼려갈 수 있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비로소 검은띠가 되었을 때는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멋쩍은 마음이었다. ‘초단을 딸 때까지 유도를 하게 될 줄이야.’라는 작은 뿌듯함도 있었고 ‘아직은 검은띠라고 하기에는 갈 길이 먼데.’라는 부담감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초단부터가 유도 수련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것 같다. 배웠던 기술들을 가지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름대로의 주 기술도 생겼고, 대회 참가 전적도 쌓였다. 함께 땀흘리는 다양한 나이, 다양한 직업군의 친구들도 생겼다. 검은띠가 되고 나서는 이제 승급 심사일에 가서 내가 멋진 ‘받기’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유도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다보니 시간이 흘러 2단, 3단을 거쳐 생각지도 않게 4단까지 준비하게 됐던 것이다.(흰띠 시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래였다. 내가 초단을 딸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으니까.) 4-5개월 정도를 집중적으로 메치기본, 굳히기본 실기 시험을 연습하고, 서울시유도회에서 주관하는 4단 승단 심사를 위해 ‘한국유도원’에 갔다. 송파구에 있는 한국유도원은 지하에 위치한 작고 낡은 도장이었다. 3단과 4단 승단을 준비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심사날인 데다가 종종 떨어지는 이들도 있기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메치기본, 굳히기본 심사, 대련 심사 등 실기 시험을 보기 위해 낯선 이들과 도복을 입고 매트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긴장감에 얼어붙어 있다가 문득, 옛 청림유도관에서의 승급 심사가 떠올라서 남몰래 혼자 웃었다. 그때 나를 위해 팔짝 공중회전낙법을 뛰어주던 어린 검은띠 선배님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을 생각하며 웃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날 나는 제법 잘해낼 수 있었다.
어찌보면 노란띠 때의 내가 제일 자신만만하게 유도를 잘했던 것 같다. 4단이 된 지금은 내 실력이 4단이라는 타이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낯선 매트에 설 때면 단을 숨기기 급급하다. 언제쯤 지금의 나를 스스로 인정해줄 수 있을까. 그런 긴긴 생각에 젖은 채로, 나는 2025년 달력의 마지막 줄에서, 청림의 가장 오른쪽 끝 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