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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20. 2022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心理)-1

자기를 지킨다는 것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다.

교통사고였다.

국도를 달리던 트럭이 잘 달리고 있다가 갑자기 길 가장자리가 아닌 한가운데 잠시 정차해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그 트럭 뒤를 따라가시던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그걸 달리고 있는 줄 알고 따라가다 트럭 뒷 꽁무니에 부딪치신 것이었다. 상황을 빨리 인지하지 못하신 연세 많으신 아버지 잘못이 크지만, 달리다가 무슨 서류를 확인한다고 길 한가운데 차를 세운 그 트럭도 크게 잘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뒤에 따라오는 차량들을 생각해서 차를 가장자리로 이동했어야 했다. 그렇게 그 사고로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몇 시간 후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시골 마을 국도에서 일어난 일이라 검증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멀리 마을에서 길을 바라보는 CCTV가 있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대신 유족 대표로 진술을 해야 해서 경찰서를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아버지 발인을 마치고 뒷정리를 해야 했다. 트럭 운전자는 옆동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고 나는 그것이 운명이라 그분에게 너무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했다. 그분은 차를 보험에 들었으니 보험사와 해결을 보라고 했다.

그 보험회사를 상대로 협상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이 사건이 빨리 마무리될 줄 알았다. 담당자가 죄송하게 됐다고 고분고분하면서 잘 처리되길 바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고 내용을 파악한 보험사 측에서 180도 변해 강하게 나왔다. 나와 가족들 앞으로 공문을 보낸 것이었다. 보험사는 1원도 줄 수 없고 오히려 사고 당일 지불되었던 응급실 비용을 어느 계좌로 보내달라고 계좌번호까지 적어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의 있으면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최후통첩을 해왔다. 너무 기가 막혀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 담당자는 바뀌었고 새로운 담당자라고 한 친구가 전화를 받고는 공문은 자기들 입장이고 사내변호사 조언을 받고 그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해는 갔지만 너무 괘씸했다.

사고 원인이야 어쨌든 사람이 사망한 사고라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출 줄 알았다. 처음 담당자는 그래서 그나마 마음이 풀렸었다.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화만 내봐야 나만 피곤할 뿐이었으니…

바로 아는 변호사를 붙여 소송에 들어갔다.

보험사 쪽에서는 이 간단한 사고에 세 명의 변호사가 붙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고가 선례를 남길 만한 특이한 사건이라 무조건 자기들이 이겨야 했던 소송사건이었다.



지루한 법정 공방은 계속되었다.

1심에서 끝날 일을 그들이 항소해서 2심까지 가게 되었지만 결국 우리가 이기게 됐다. 세 명이나 붙어서 우리가 불리할 만했는데도 왜 우리가 이겼을까. 우리 측 변호사 혼자 잘해서? 저쪽 변호사들이 못해서? 아니다. 사실이 너무도 명확한 사건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것들이 끼어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진실이 뒤집힌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어 그것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들이 살기 위해 억지로 사실을 왜곡 주장하는 일들을 공익기관에서 버젓이 공공의 법을 이용해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송이 끝나고서도 속이 상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고통을 무시하는 행위는 적자생존이라는 경쟁사회에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 명이나 되는 상대측 사내 변호사들. 지금 그들은 그곳에 아직까지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만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과거에 사내변호사 담당이었던 내가 겪어본 일 때문이다. 그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반대 측 변호사들이긴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있다.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약간 섞어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사람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주저할까. 그것은 내 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왜 하는지 알면 바로 살짝 왜곡하는 그  짜릿함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거짓말은 나를 좀 더 편하게 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며, 나 자신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살아가는데 아주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표절이 일어나고  학력위조가 있으며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것처럼 말할까. 반대로,  것을   것처럼 말할까. 그것이 자기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더 교묘하게 속인다. 정치인, 종교인, 법기술자, 교육자 등, 이른바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 뒷모습을 보면 정말 지저분하다.

자기만의 성을 지키기 위해 남이 애쓰게 만들어 놓은 성에서 조금씩 탈취하는 스릴을 맛보다 그것이 별로 문제가 안 되고 계속되면서 마치 자기 소유물처럼 여겨버리는 행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자기도 착각한다. 이게 내 능력이구나 하고.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최고라고 하는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을 보면 된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과 사회 정의를 아주  외친다.

거기에 으면 안 보일 줄 아는 모양이다.




이미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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