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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May 30. 2022

그 지겨운 교육을 그리워하다니…

내가 나를 알 수 없다!!


소위 공기업에 다녔다.

사규가 있고 규칙이 있었고 지침이 있었고 행동규범이 있었다.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회식을 하거나 간식타임 때가 되면 신경이 쓰였다. 여직원들이 많아서였다. 해마다 남녀 간 비율은 서로 가까워져서 어느 부서는 여직원 비율이 더 높은 곳도 있었다. 가끔 이런저런 일로 모이다 보면 주로 좌장 역할을 하다 보니 혼자서 말할 기회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 그런데 한참 웃고 떠들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면 말실수를 했나 싶어 뭔가 뜨끔했고, 그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사내 법규, 행동규범이었다. 선을 넘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지만, 내 말의 강도에 따라 함께 웃고 떠드는 저 착한 동료가 순간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말을 할 때마다 단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실수할 수도 있어서, 사실 법규보다 더 신경이 곤두선 것은 함께 얘기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 표정이었다. 혹시 내가 실수로 무슨 말을 했는데 오해해서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신고하지 않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북한의 5호 담당제가 생각났다. 아무리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심찮게 동료들이 말실수를 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한 의도치 않은 행동 때문에 오해를 사게 된 일을 많이 보아 왔고, 결국 오해가 풀리지 않아 큰일로 곤욕을 치르는 동료를 눈앞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이슈화되진 않았지만 몇몇 부서장들의 이름도 가끔 회자되었다.


소위 피해 직원이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사건의 경위를 올리면, 회사 내에 전체 공지가 되어 누가 무슨 말실수나 행동을 잘못했는지 다 알게 되고, 감사실은 더 크게 이슈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신속하게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소문이 더 빨랐다. 벌써 조사하기도 전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소문이 나면 낙인이 찍히고 그때부터 당사자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근무를 해야 했다. 오해가 풀리면 다행이지만, 피해를 호소한 당사자가 끝까지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아무리 자신이 결백하다 해도 이미 사내에 소문이 퍼져 수습할 길이 요원해졌다. 사실과 다른데도 일이 잘못 진행되면 진짜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특히 남직원들이 자주 불공평을 호소하기도 했다. 여직원들이 맘에 들지 않은 남직원을 찍어 기회를 엿보다 트집 잡아 신고해버리면, 회사생활은 그것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남직원들이 생각했다)

그래서 남직원들이 여직원들과 함께 모여있을 때는 전과 다르게 가능하면 조용히 있어야 했다. 팀원의 사기를 진작해 주는, 또는 팀 간의 교류를 확장해 주는 그 즐거웠던 부서 회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술은 가게에서 사서 사택으로 갖고 와 자기 방에서 마시든지, 정 밖에서 먹고 싶으면 가장 가까운 동료와 1차만 했다. - 그런데도 입사동기를 동료로 생각한 천진난만한 바보도 있었다 - 암튼 특히 술자리 남녀는 부동석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최선책이었다.



교육, 질렸다.

남녀의 비율이 많이 좁혀진 현실 속에서 특히 성폭력 예방교육은 거의 분기마다 받았고, 이름도 종류도 많은 교육들을 시도 때도 없이 받았다. 소방교육, 안전교육, 건강교육, 사내예절교육 등은 기본이었고, 김영란법 등 공직자 품위와 관련한 여러 교육을 받았다. 거기에 정기적인 인문학, 경제금융 교육, 정부 지시사항 등 교육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그것들은 다 나를, 구성원을 훌륭하게 만들 교육이었다. 교육은 나쁜 교육은 없으니까.


오프라인 교육은 뒷자리 앉으면 그나마 교육받는 동안 졸기라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사내 인트라넷 홈페이지를 로그인하면 받아야 할 온라인 교육이 짜증 날 정도로 쭉 올라와 있었다. 이수하지 않은 교육은 팝업이 튀어나와 친절하게, 약 오르게, 기분 나쁘게 알려줬다. 그 시간도 짧지 않은 건당 평균 20분 이상이었다. 교육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그냥 클릭해 놓고 다른 일 봐도 시간이 다되면 이수가 되었는데, 좀 지나자 그 꼼수를 간파한 영상 제작자들이 중간중간 테스트를 끼워 넣어 꼼짝 말고 다 들어야 이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IT 담당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죄가 없었다. 시킨 대로 해서 그렇지. 당연 교육담당자들이 그렇게 주문을 했을테다.


코로나가 발생한 후로는 모든 것이 줌이나 온라인을 통한 교육과 비대면 회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온라인 교육에 신물이 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교육 영상 켜놓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입에선 욕이 나와도 다 들어야 했다. 그것도 상세하게.

그래서 교육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교육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교육 안 받아도 다 알 것 같았는데 꼭 중간 테스트받으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틀리면 맞을 때까지 다시 들어야 했다. 죽을 맛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교육 안 받아도 공기업에 특화되고 체화되고 잘 교육된 모범 직원이라는 것을 서로가 인정해주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교육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원이 많아서인지 꼭 해마다 한두 건 이상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건 교육을 받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 아닌 재수 없게 손 있는 날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그들끼리)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그 말도 조심스러웠다. 대놓고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소릴 했다간 좋은 말로 가해자와 동일 인물로, 속된 말로 똑같은 인간으로 간주했다. 어쨌든…



그 많은 세월을 뒤로하고,

퇴직을 한 후 다행스럽게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선 공기업에 특화된 자랑스러운 모범사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여직원도 없었고 코로나로 회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간식타임은 그야말로 천국 잔치로 먼 과거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는 전설이었다. 너무 오랜 범생이 생활을 해서인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너무 제멋대로였다. 고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 뜯어고치려면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했다. 사실 규정도 있고 법규도 존재했지만 지켜지는 것이 별로 없었다. 화를 내고 싶어도 혼자만 괴로웠고 규칙을 굳이 준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교육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솔깃해졌다. 교육이라고? 여기서도 교육 같은 것을 해? 무슨?

‘성희롱 의무 교육’이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게 그렇게 반갑고 설렜다. 내가 여기서 교육을 다 받다니. 교육 날짜가 기다려졌다. 언제 교육이 있냐고 직원에게 물어봤다. 힐끗 대답하며 쳐다보는 모습이 관종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다가온 교육하는 날.

목소리가 꾀꼬리 같은 중년의 강사님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휴대용 스크린과 노트북 그리고 빔프로젝트를 설치하더니 사무실을 둘러보고는 ‘여긴 여직원이 없어요?’라고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그럼 교육 필요 없단다. 허참! 너무 실망스러웠다. 아니 여직원이 없어도 (내용이야 다 알지만) 사회생활하면서 상식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 법규, 도리, 예절 같은 거…

아 이건, 그냥 사내용이란다. 그러더니 대신 그냥 갈 수는 없으니 보험 강의를 한단다. 성희롱과 보험을 아무리 연결하려고 애썼지만 공통분모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참 오랜만의 사내 수강이라 얼마나 진지하게 들었는지 하마터면 보험 계약할 뻔했다.


단 1분도 온라인 교육을 받기 싫었던 내가 다소곳이 보험교육을 아니 성희롱 교육을 빙자한 보험 방판을 김영란법 교육처럼, 유명인사의 인문학 교육처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니… 아니 그 교육을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니…


30년이 넘은 공기업 순한 모범생이 규칙 없는 곳에서 규칙을 준수할 기회를 기다렸다는 점도 특별했지만, 오랜 시간 몸에 기록된 규칙을 그리워한 것 같아 세뇌된 자신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남과 북이 따로 없구나. 그냥 위아래에 살고 있을 뿐, 어떤 것이 인풋이 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효과 제고라는 말은 무수히 들어왔다. ‘제고(提高)’는 ‘수준이나 정도 따위를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가만 보니 정말 내가 철저하게 공기업 온실 속에서 교육효과가 제대로 제고된 범생이었다. 자대 배치된 아직은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처럼… 온실 밖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온실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나를 지금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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