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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May 31. 2022

경청한다는 것

노조위원장님


한 번은 교대근무자 중에서 민주노총 측 위원장인 ㅇㅇㅇ가 나를 보자고 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나도 그 친구가 만나자고 하니 뭔가 가슴에서 주저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소문에 의하면 그 친구가 꽤나 까다롭고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속한 노조에 조합원은 많지 않았지만, 이른바 유명한 강성 노조위원장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본부장 발령받은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처음부터 만나길 꺼리면 두고두고 힘들어질 것 같았다. 바로 만나자고 했다. 나이로 따지면 두세 살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하지만 위원장이라 깍듯이 대했다. 본부장실로 불렀다.


“참 세월 좋~네. 무슨 궁전도 아니고 이렇게 대궐 같은 본부장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안녕하세요?”


그였다. 처음 본 얼굴. 키도 크고 덩치도 우락부락했다. 그의 위세에 약간 움츠려졌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비꼬는 듯한 일성. 건들거리는 듯한 높낮이가 있는 건달 같은 억양, ‘안녕하세요?’ 말투에서 평소 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본부장인 나한테도 이 정도니 일반 직원들에게는 오죽할까 싶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뭐 대장이 왔다고 하더만 이날 이때까지 내가 지나가는 개도 아니고 불러주면 짖나 잡아먹나 뭐 개취급도 안 해주는 겁니꽈?”

“무슨 소리요?”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다 만났다고 하시더만 난 뭐냐 이 말씀입니다. 명색이 힘은 없지만 그래도 민주노총 위원장인데..”

“아, 교대근무 한단 말 들었어요. 지금 만났잖소? 자, 자 여기 앉아봅시다. 처음 보는데 노사를 떠나 그래도 통성명은 합시다. 아무리 그래도 첫 상봉인데 말투가 참 걸지네."

"하하하, 그렇게 들립니까? 좀 통하는 데가 쬐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린 처음 만났다.  

차 한 잔을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말이 시작되자마자 회사에 대한 불신의 소리가 본부장실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소리가 너무 컸다. 민망해서 그냥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조용히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최대한 낮은 소리로 그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위원장님..."


중저음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내자 시끄럽게 뭐라 떠들던 그가 잠시 주춤했다.


"요즘에 제가 책을 읽었어요. 뭔지 아세요? 바로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이죠.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혹시 그 책 봤어요?"

"제가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있는 그런 사람인 줄 아세요? 본부장님 같은 한가하신 분이나 시간 때우기에 좋은 것이 바로 책이겠죠. 우린 정신없이 세상을 삽니다."

"그 책 안 읽었군요. 그럼 말하기 좋네."


나도 약간 반말을 섞어가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원래 큰소리치는 놈은 마음이 약한 법, 잠깐 동안 스치는 그의 표정과 눈빛을 내가 놓치지 않았다.


"그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디다.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거리가 멀어서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크게 말하는 것이라고."

"..............."

"아니, 오늘 처음 봤고, 아직 마음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내 귀는 청력이 아주 정상적인 귀인데 왜 그렇게 크게 말하세요? 우리는 연인은 아니지만 연인들이 왜 조용조용 말하는지 아세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서 그냥 속삭이듯 말해도 다 알아듣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러지는 못해도 조용히 말 좀 합시다. 서로 1 미터도 안된 거리를 두고 크게 말 안 해도 다 알아들어요. 우리 나중에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기죽지 않으려고 그 또한 큰소리치다가 내가 조용히 말을 하자 그도 상당히 누그러뜨리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 한마디에 기가 꺾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노조가 요구하는 부분에 대한 회사의 대처에 화를 많이 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회사도 방향이 있고 예산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본사 차원에서 선뜻 그 요구들을 다 들어줄 수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 얘기를 했다.   


"위원장님, 나는 노사문제도 노사 문제지만  오늘 우리 위원장님이 어떻게 사시나,  어떤 사람인가 그걸  알고 싶어서 오시라고 했는데 화만 잔뜩 내고  재미없네요. 우리 위원장님 얘기   보세요."


그때부터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출신이 어디며, 가족관계가 어떻고, 학교는 어디 나왔으며...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자기 신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말 하는 동안은 상당히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도 바뀌었다. 때로는 힘 있게 때로는 힘 빠지듯 스토리에 따라 말의 높낮이가 출렁거렸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냥 메로 떡을 칠 때 아낙의 손이 떡에 재빨리 들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물을 묻히고 나오듯 그 숨 고르는 틈새를 기다렸다 얼른 추임새만 넣었다.


"오오, 세상에... 그래서요?"


그는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때로는 어려웠던 가정생활 때문에 그 시절이 생각났는지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가 실패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했다. 의외였다. 그 사람 맞나 싶었다. 한참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내가 10여분, 그가 50분은 말한 것 같았다. 밖에 있는 직원에게 물 한 컵을 달라 해서 그에게 주었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우리 위원장님 안 불렀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이렇게 좋은 분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았으니 세상에... 그래서 사람이란 만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자,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우리 매주 시간 날 때 만납시다. 위원장님 이야기 못다 한 것 다 듣고 싶어요."   


들어올 때는 큰소리치고 들어왔던 그가 나갈 때는 고분고분해지고 아까 들어올 때 미안했다며 사과까지 하고 나갔다. 그 소리에 오히려 내 가슴이 뭉클했다. 본부장실을 나가는 그를 배웅하며 덩치도 큰 그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엄청 계면쩍어했다. 참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난 오늘 그냥 그의 이야기만 들어주고 맞장구쳐 준 것이 전부인데 그는 너무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는 들어줄 귀가 없는 사람들과 살아온 것 같았다. 사랑이 고픈 사람인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그가 생각났고 퇴근해서도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를 자주 만나기로 해 놓고 또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한 해가 금방 흘러갔다. 가끔 그가 생각났지만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 그가 점점 잊혀 갔고 나는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퇴직을 몇 개월 남겨두고 마지막 추석명절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때는 임금피크제 기간이라 보직에서 떠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였기에 현직에 있을 때에 비해 나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그리웠지만 내가 먼저 만나자고 말하기에는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몇몇 평소에 나를 잘 따르고 함께 등산도 자주 했던 동료들이 자주 내가 있는 별도 사무실로 찾아와 말동무도 해줬다. 혼자 사무실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보니 그였다. 깜짝 놀랐다.


"와, 우리 위원장님, 전화까지 주시고...."

"형님, 형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나쁜 놈이에요. 본부장님 찾아본다고 해 놓고 교대근무 핑계 대고 이제야 연락하게 됐습니다. 형님, 이제 조금 있으면 나가시는 겁니까? 와~ 세월이... 형님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저 이런 말을 할지 모르는데... 형님 진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뭘...."


통화를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우리 한번 보자고..."

"............"


 목멘 음성을 느꼈는지 그도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하고 헤어졌다. 만나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 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다. 그와 다시 만나면 우리들의 마지막 대화가 희석될  같아 그게 싫었다.


마지막 퇴임하는 날이 왔다.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로비에 동그랗게 서서 퇴임하는 나를 배웅해줬다. 하나하나 악수하며 그간 나를 도와준 부분에 고마워했다.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어딘가 허전했다. 교대근무자들은 근무시간이 달라 퇴임식  그날 근무중인 몇몇의 직원들만 보였다. 갑자기 뒤에서 '형님!' 하면서 그가 달려올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오면서 계속 뒤를 돌아다보았다. 로비에 있던 직원들이 떠나지 않고 모두들 현관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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