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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n 28. 2022

제5장 저편의 빛(1)

1. 나쁜 사마리아인


 어두컴컴한 퇴근길. 길 가로 노란 은행잎들이 계속 흩날리고 있다. 언제 제대로 가을을 느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은행잎 하나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던 늦은 가을. 두 팔을 하늘 높이 벌리면서 떨어지는 낙엽을 온몸으로 맞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약간은 어설프게 보였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비틀걸음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그는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동생의 일 이후로 그는 쇼팽을 무척 좋아했다. 선율 하나하나가 그의 마음을 위로했고 그 허전하고 아련한 마음의 방에 쇼팽이 찾아오면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쇼팽이 그랬다기보다는 단조 Minor가 많은 숙연한 그의 음악이 그러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다운로드하여 다섯 번이나 본 이유도 쇼팽의 배경음악 때문이었다.   

  

- 누군가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 풍장(風葬)이라고 했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아름답고 정겨운 가을의 정취라고 표현했지만, 정작 떨어지는 낙엽들은 그동안 생명을 공급받았던 본류로부터 떨어져 나간 죽음 그 자체가 아니던가. 죽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죽으면서까지 인간에게 이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떨어지는 이 낙엽들에게서 말고는 어디에서 느낄 수가 있단 말인가. 살았을 때 인간에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풍장(風葬)이 될 때 그 흩날림으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결국은 사람에게 밟히어 온전한 희생을 선사하는 그대 낙엽이여! 그대는 온몸을 던져 인간을 위로하는 위로자로구나. 너에게서 참 진정한 희생의 의미를 찾는구나. 혹시 너는 내 아우가 네게로 환생해서 나에게 보여주려고 지금 나타난 분신이 아니더냐. 그래 맞다. 사랑하는 내 아우가 나와 함께 했던 짧은 기억의 편린들이로구나. 나에게로 쏟아져라 우수수. 하나도 그냥 가지 말고 내 마음을 적시고 가려무나. 사랑하는 내 아우가 남긴 아름다운 오색 편지들이여!     


 그는 스산한 퇴근길을 걸으며 온몸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면서 귀로는 쇼팽을 눈으로는 은행잎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낙엽을 밟지 않으려고 돌아서서 징검다리로 훌쩍 뛰어넘고 지그재그로 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기엔 우스꽝스러웠지만 그에게는 흩날리는 낙엽 속에서도 동생을 찾으려는 애틋함이 있었고, 마치 동생으로부터 온 편지를 온 몸으로 받으려는 듯 두 팔을 벌려 낙엽을 맞고 걸어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 이제는 잊을 만도 한데 왜 그렇게 오늘따라 그 녀석 생각이 나지.     


“여보. 오늘은 웬일이에요. 일찍 퇴근하셨네. 영철 씨가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배터리가 다 된 거 아니에요? 아니면 진동으로 해서 못 받으셨나?”

“영철이? 무슨 일이 있대?”

“모르겠어요. 어디서 공연이 있다고 해요.”

“무슨 공연?”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연례행사로 하는 뮤지컬과 오페라가 있대요. 거기 가족이 참석하면 좋을 거라고 당신 오면 꼭 말해주라고 하던데.”     

“공연, 나 별로인데, 잠만 오고 말야. 작년에 우리 팀에서 신도림에 있는 아트센터에 갔었는데 처음 시작하자마자 잠만 쏟아졌어. 낮에 업무로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내용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더라고. 그런 것 비슷하겠지.”

“공연이야 뻔하죠. 노래 부르고 연극처럼 연기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래 말이야.”

“나중에 전화해 봐요.”

“연락 또 오겠지.”

“이번에는 당신이 한 번 해봐요. 맨날 영철 씨가 먼저 전화하더라.”

“알았어.”


 영철에게서 전화가 왔나 보다. 사무실에서 늘 하던 식으로 진동으로 해 놓았더니 시끄러운 전철 속에서 전화 온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휴대폰을 보니 두 번이나 영철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라 전화하기도 좀 그랬지만, 평일이라 별일 없겠다는 마음이 들어 혹시 다른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를 해 보았다. 긴 신호음이다. 녀석 컬러링을 바꿨나 음악소리가 나지 않고 전자음의 긴 신호가 갔다.     

“철민이니? 전화 좀 받아라. 너 그렇게 무디어서 무슨 일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응. 진동으로 해 놓다 보니 그랬어. 별일 있어?”

“네 집사람한테 잠깐 얘기를 하긴 했는데 크리스마스 전날 좋은 공연이 있어. 너희 가족 초대하려고 미리 전화한 거야.”

“나, 공연은 별로인데...”

“아냐. 참석해 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교회에서 하는 거야?”

“아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해.”

“세종문화회관?”

“응. 가서 보면 웅장할 거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공연하고 많이 달라. 좋은 자리 마련해 놓았으니까 꼭 참석해서 우리랑 같이 보자. 알았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네. 알았어. 가능하면 참석하도록 할게.”     

“야, 너 ‘가능하면’ 이런 소리 좀 하지 마라. 철학하는 사람처럼 표시 내지 말라고. 꼭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 놓고 나중에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화가 나더라. 애쓰게 준비해 놓으면 엉뚱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어이, 친구야. 그날 다른 일이 있으면 참석 못하는 거 아냐. 아무리 직장에서 별 볼 일 없는 대리라고 하지만 12월엔 별놈의 약속도 얼마나 많니. 그래서 가능하면을 붙인 거지. 거기다가 꼭 철학을 붙여야 되겠니?”

“아이고 알았네요, 대리님. 내가 초청한 것이니 좀 확답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거지 다른 뜻 없네요.”

“그거 말고 다른 일은 없고?”

“그게 내겐 별일이다.”     

“알았어. 그런데 말이다. 우리 아파트에 복덕방 하시는 분이 한 분 있어. 복덕방이라고 하니까 노인네같이 느껴지긴 하는데, 부동산 중개업. 엊그제 일요일 날 산책하다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분 하고 재미있는 얘기 참 많이 나눴어. 천문학 전공했다는데 과학교사하다가 학생 부모하고 다투는 바람에 그냥 학교 때려치우고 부동산을 하게 됐다고 그러더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니 참 재미있는 분이더라. 너랑 같이 셋이 모이면 참 가관이겠던데.”

“그래? 나중에 소개해 줘. 서로 사귀어놓으면 좋지 뭐.”

“알았어. 저녁식사는?”

“지금 하려고.”

“알았다. 저녁 맛있게 먹고 즐겁게 보내.”

“그래. 그럼 너 스페셜 공연 참석하는 걸로 간주할 테니 그리 알아라.”

“녀석도 참, 알았다.”

- 뭔 놈의 공연이 그리도 중요한지 몇 번씩이나 강조하니. 암튼 녀석이 소개해 주는 것이니까 뭔가 손해 보는 일은 아니겠지.     


 그는 늦가을의 정취를 좀 느끼고 싶어 식사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영철과 통화하고 난 후에 생각이 바뀌어졌다. 그냥 조용히 서재에서 책이나 보고 싶었다. 밖에 나가면 또 감성에 젖어 동생 생각이나 하고 마음이 울적해져서 들어올 것 같았다. 가을이 되면 늘 그랬다. 남자가 가을을 탄다고 했던가. 가정이 있는데도 수십 년 전의 동생에 대한 추억은 여러 곳에 아직도 남아 있어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되었고, 특히 가을이 오면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했다. 어쩌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도 모른다. 필시 자주 그런 상상에 빠지다 보면 염세주의자가 되어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버릇은 여전했다.      


 별을 노래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한 윤동주도 그가 생각할 때 어쨌든 요절을 했고, 몇몇 가수들의 노랫말과 선율이 약간 도를 넘어 아프고 슬퍼지면, 꼭 그 가수는 젊을 때 세상을 떴다는 사실이 늘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꾸만 동생에 대한 기억을 애써 외면하지 못했다. 어린 생명이 마지막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살고자 절규하는 그 몸짓.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도 죽음을 맞이할 때 몹시 두려워할 텐데, 이제 세상에 나와서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이 맞이하는 그 두려움의 끝.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던 그 처절한 순간.      


 늘 그 환영이 그의 뇌리에 남아 있어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늦가을이나 동생을 업고 옆 동네를 다녀왔던 어느 비 오는 초여름이 오면 더욱더 아련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겨울이 지나 대지가 녹고 새싹이 움트는 춘삼월이 돌아오면 그는 괜히 더 우울했다. 그에게 3월은 그런 달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책장을 쳐다보았다. 서로가 얼굴을 내밀며 선택되기를 바라는 경쟁자들. 어느 녀석은 이미 몸을 반이나 앞으로 내밀며 간택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사실 독서의 계절이 다 지나갔는데도 예전과는 달리 책이 별로 손에 잡히지가 않고, 매주 한 번 씩 드나들었던 서점에도 안 간지가 꽤 된  것 같아 괜히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에 두 번째로 읽다가 중간에 접어놓은 책을 집어 들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Bad Samartans.’     


 그는 처음에 이 책을 구입하면서 참 이상한 묘미를 느꼈었다. 첫째 책 제목이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에 빗대어 비판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이 특이했고, 두 번째는 그 책 저자의 아들 이름이 잃은 동생 이름과 같아서 친근해진 것이었다. 사실 성경을 읽지 않아서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그저 착한 일을 한 어떤 사마리아인이라는 정도라고만 알 뿐, 그 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기존의 경제학 서적과는 달리 힘 있고 막대한 자본을 가진 국가가 작고 약한 나라의 경제를 착취한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 따라서 전자를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유한 것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저자가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조금 더 확실하게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특히 그 책은 기존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일시적으로 일부에서는 금서가 되기도 했던 책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경제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책이기에 그래서인지 좀 더 자세하고 읽어보고 싶은 충동과 호기심이 자꾸 그 책으로 눈길이 가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도 그날따라 내용에 집중이 안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의가 산만해지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에 영철하고 교류가 잦다 보니 자꾸 생각하는 방향이 성경 쪽으로 흘러가는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아니면 여행 때문에 접했던 유럽의 가톨릭 문화나 이슬람 영향 때문은 아닌지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더구나 제목만을 봤을 때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모르는 녀석이 무슨 나쁜 사마리아인을 읽고 있나 하는 마음도 올라와 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 선한 사마리아인이라. 그 내용이 그게 그거겠지 착한 어떤 사마리아인. 얘들은 나쁜 얘들이고...     


 잠시 책을 물리치고 노트북을 꺼내 메일함을 열어봤다. 수십 개의 메일들이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며칠을 확인하지 않았더니 쓸데없는 스팸이 계속 쌓여 있었다. 눈으로 한번 힐끗 쳐다보면서 한참 동안 다 지우고 다시 메일 쓰기로 들어갔다. 밤이 늦어 영철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오랜만에 메일을 연 것이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성경 구절과 함께 알려달라고 했다. 시간은 급하지 않으니 아무 때나 준비되는 대로 메일로 알려달라고 보냈다. 혹시 오랫동안 메일 확인을 하지 않을까 봐, 문자로 메일 보낸 사실을 알려줬다. 그 정도는 늦은 밤이라도 이해해 줄 만한 친구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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