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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l 01. 2022

나도 정말 답답하다!

교회에서


아버지는 팔십 평생을 유교적인 환경 아래에서 사신 분이라 아들들이 교회 나가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그렇다고 아들들에게 함부로 말씀하시진 않으셨다. 아니 마음속에 있는 교회에 대한, 신앙에 대한  당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표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세상의 이치를 잘 따지시는 분이라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들이 당신이 생각할 때 이치에 맞지 않아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다. 왜 사탄을 만들어서 인류에게 죄를 가져오게 했는지, 왜 선악과 좀 따먹었다고 우리에게까지 그 죄의 형벌을 지웠는지, 왜 힘들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는지, 믿을 수 없고 이치에 맞지 않은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또 무엇 때문에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좋은 전통 신앙도 많은데 굳이 이스라엘의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그것을 설명해 보라고도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아 독학으로 중학교 과정을 배우셨다. 그래서 스스로 아시는 것이 많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거기에 대한 반론이 더 많았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을 어떡하냐고 하셨다. 좀 더 그때 대화를 깊이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사실 그 당시 아버지와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기에는 팔십 년의 벽이 너무 두꺼웠다. 일기 곳곳에 그런 부분들이 나타난다.         


  

오토바이로 둘이서 교회 가려고 했는데 수지에서 구역장이 왔다. 차로 같이 가자고 한다. 눈이 쌓여 가기가 위험해서 왔다는 것이다. 간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 가끔 졸렸다. 목사님 설교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명령에 불복하여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죗값을 예수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에서 벗어나 천당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 이론에 수긍이 안 되는지 나도 답답하다. 12시 45분에 끝났다. 12:54에 승강장에 도착해야 한다. 날씨가 추워서 빨리 하우스를 관찰해야 한다. - 교회에 다녀오다 (2017.1.22)      


    

아버지는 자식들의 권유로 어쩔 수없이 교회는 나가셨다.

어머니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늘 교회는 나가셨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물론, 복음도 모르시진 않았다. 그 내용은 자세히 알고 계셨다. 다만, 마음에서 그것이 쉽사리 인정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마음이 의(義)에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자식들은 이제 연세도 많은 아버지를 생각해서 일 좀 그만하고 여생을 하나님 앞에 맡기면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시길 바랐다. 팔십 년 동안 세상의 이치를 경험했으면 됐지 왜 그렇게 의심이 많으냐고 큰소리도 쳐보았다. 특히 무엇인가를 잘 따지시는 아버지께 보이는 세계 말고, 보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드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때론 수긍하시다가도 어떤 생각 하나가 올라오면 그 생각을 쉽게 버리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독학을 하시기 전,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피타고라스 정리를 설명해 드렸더니, 실제로 직각삼각형 세 변을 자로 재어 확인했던 분이다. 다시 말해서 눈으로 확인해야 이해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냐고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간밤은 비가 내려 영상이었다. 비 뒤끝이라 땅이 얼지 않아 오토바이로 교회 가려고 나섰는데, 수지 구역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차편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매번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허수아비다. 나도 나를 알 수가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마음 깊이 믿음이 스며들지 않는다. 정말 도저히 나는 믿음과 상관없는 사람이다. 그저 자식들이 권장해서 나가는 것이지 마음대로 잘 안 된다. 자주 나가면 혹시나 믿음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것을 어찌하리. 생각해 보자. 성경 말씀이 의문 투성이다. 무슨 말을 하면 이치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왜 하나님은 사탄을 만들어 놓았을까. 하나님의 훼방자라고 하는데 그런 존재를 왜 만들어 놓았냐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그런 의심이 풀리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내게 맞지 않는 종교인 것 같다.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데 그것도 부담스럽다. 작은 교회는 그 부담이 더 크다. - 답답한 내 마음 (2017.2.5)  



일기를 읽으면서 아버지의 답답한 심경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한 번씩 주말에 부모님께 내려가면 부모님을 차로 모시고 함께 교회를 갔다. 그때는 아무 불평도 없으셨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런대로 교회에 적응을 잘하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꺼내어 왜 얘기를 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해서 당신의 불편함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던 일종의 묵언수행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그나마 복음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방법이 한자(漢字)였다. 어느 날 '희생(犧牲)'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해서 설명을 해드렸다. 눈빛이 달라졌다.  


다른 때는 전혀 관심 없으시다가 한자로 설명드렸더니 내게로 조금씩 끌려 오시는 것을 느꼈다. 바로 희생은 복음이라고 설명했다. '희생 희(犧)'자는 파자해 보면 흠 없는(秀) 소(牛)나 양(羊)을 잡는 것(戈)으로 구약성경 레위기의 속죄 제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한복음 5:39)라고 했다. 그리고 '희생 생(牲)'자는 다시 그 제물(牛)이 사는(生)는 것이며 그것이 부활이라고 했다. 바로 희생(犧牲)은 로마서 4:25의 말씀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해 내어 줌이 되고(犧)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牲)는 뜻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나중에 아버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아버지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을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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