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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l 04. 2022

고추 모종을 옮겨 심다

비닐하우스에서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농부였다.

농부는 당연히 농사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농부로 태어났으니까. 물론, 농촌 일이 얼마나 힘든 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시골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아버지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하고, 우리는 쉬다가 돌아오면 되는 줄 알았다. 언젠가 성인이 다 된 딸에게 내가 물었다. 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빠보고 하라고 하냐고.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너무 쉽고 간단했다.

‘아빠니까’      


그 말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자녀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지는 사람이구나. 나도 결국 아버지를 그렇게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도 농촌 일이 고되고 너무 힘들지만, 오로지 자식만을 보고 살아온 세월이라 운명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신세로 여기시지 않았을까. 그 벗어날 수 없는 노동의 멍에를 자식들에게만큼은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묵묵히 그 일을 힘들어도 해 오시지 않았을까. 왜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아니, 그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었으면서도 서로가 피했던 것 같다.

서로가 미안하니까.           



고추밭, 어제 석양에 했던 것을 삽으로 고르고 고추 모종 400주 1 상자 3개 싣고 왔다. 고추 모종이 너무 가늘고 웃자랐다. 뒷문에서 바람이 세차게 들어온다. 문짝에 비닐을 입혀 가렸다. 3 상자는 부직포를 씌우고 난로를 켰다. 고추 모종 싣고 와서 회관에서 밥 먹고 고추 두둑 고르다 빠진 것 20포기 정도 옮겼다. 바람이 세고 날씨가 차가웠다. 고추밭 관리기로 골 타고 고르다. 10:35에 시내 도착, 고추 모종 3 상자 싣고 옴. 또 고르고 석양에 몇 포기 가식. 뒷문 비닐 입히고 모종 보온처리. 난로 보온함. - 고추 모종을 옮겨 심다 (2015.2.26)          



수첩 속의 일기는 내게 한없는 죄송함과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한 줄 한 줄의 일기는 너무나 힘들고 무거운 노동과의 싸움이 진액이 되어 펜 끝으로 흘러내린 고난의 기록과도 같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게 삽질을 해보라고 하셨다. 삽질을 하는 나를 가만히 눈여겨보시던 아버지는 ‘너는 농촌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다, 천상 공부를 해야 하는 팔자다’라고 하셨다. 삽질 하나만 봐도 아시겠다는 뜻이었다. 한 번씩 시골에 가서 부모님을 돕는다고 몸을 움직이면, 시골 출신답지 않게 금방 나가떨어졌다. 다른 동생들은 똑같이 일을 하는데도 차분하게 하는데, 나는 처음엔 금방 다 해버릴 것처럼 덤벼들었다가 금방 지쳐버리는 타입이었다. 1000미터 달리기 초반에 계속 1등으로 달리다 후반에 힘이 부쳐 꼴찌 하는 것처럼....         


      

어제 얻어온 고추 모종을 가식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하우스 문을 열어놓지 않았다. 점심 후 안사람과 같이 나와 볕이 반짝 비춰서 문을 열다. 동생이 와서 논 위쪽에 거름자리 만들기 위해 돌을 쌓아놓았다. 심란하여 미루기만 했는데 시작하고 보니 거의 돌을 다 쌓았다. 저녁 먹고 누운 것이 깜박 잠이 들어 다시 깼다. 수막을 했는지 물어봤더니 전기가 불통되어 못했다고 한다. 또 고장인가 싶어 가서 확인해 보았더니 접지 불량이 된 모양이다. 고쳐 놓고 자전거를 타고 회관에 문단속을 하러 갔다. 보일러 끄고 잠시 누운다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다. 잠결에 전화벨 소리가 들려 일어났다. 급히 집으로 왔다. - 회관에 문단속 가다 (2015.3.3.)       


  

아버지는 마을 회관에서 노인회장을 하고 있었다.

자주 회관에 들러 살펴봐야 했고, 일이 끝나면 다시 회관으로 가서 문단속까지 하고 와야 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회관에 잠시 들렀다 잠이 드신 모습, 하지만 그 잠은 편안함이 아니라 편치 않은 순간의 쪽잠이었다.

일기를 보면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생각났다. 바로 이순신이 바람에 흔들려 사각거리는 나뭇잎의 소리를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오는 적의 뱃머리의 깃발 나부끼는 소리로 생각하고, 깜짝 놀라 깨어보니 등에 식은땀이 흥건히 젖어있었다는… 아버지도 마음 쉴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뭔가 늘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고, 그것들은 마음 한구석에서 아버지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 왜, 아들들은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안아 주지 않았을까. 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살갑게 대하시지 못했을까. 아들들은 손주들과는 달리 아버지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자식들에게 너무 잘해주거나 너무 풀어주면, 자식을 망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자식 교육을 엄격하게 한 평소의 지론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아들들을 안아주신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돌아가신 후 염을 할 때 안아드렸다. 이미 돌아가셔서 다른 세계로 가버린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안고 그곳에 눈물을 뿌렸다. 아쉬운 것은 가시는 길에서 아버지의 몸은 안았지만, 마음을 안지 못해 그것이 평생의 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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