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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l 05. 2022

촌로(村老)의 당일치기 관광 일지

새만금 그리고 여수를 가다.


농촌에 있는 사람들도 바쁜 농사철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모임에서 관광을 갔다. 자주 부모님이 어디 다녀오셨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한철 농사를 지으시고 관광을 통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아 가실 때면 늘 잘 다녀오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다만, 보통 봄이나 가을인 관광 시즌에 구경을 가시는 것이 아니라, 농사일 때문에 주로 겨울이 다가오는 시절이나 춘삼월이 되기 전까지 추운 날에 가야 했고, 일이 뜸한 한여름 더위 때 가야 했다. 그때만큼은 마음이 편하셨을까. 일기를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설렘이 있는 것인데, 연세가 많아서 많이 걸을 수 없고 주로 버스 안에서 구경하고 식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니 굳이 관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버지는 관광도 그래서 젊을 때 많이 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곤 했다.              



동창회에서 관광을 가기로 했다. 아침 8시 ㅇㅇ농협 광장에서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겨울 날씨처럼 춥다. 하복으로 단장한 나는 아무래도 추울 것 같아 외투를 내어 입었다. 목도리 장갑으로 무장했지만 찬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찬바람을 헤치며 오토바이로 달렸다. 장갑을 끼었지만 손이 시리다. 조합 앞마당에 하나둘씩 모여든다. 백평 ㅇㅇ이가 마스크를 쓰고 왔다. 잠시 후에 조ㅇㅇ 차가 왔다. 모두 모인 사람이 전부 아홉 사람이다. 날씨가 춥고 서해안은 바람이 많이 부니 행선지를 바꾸자고 한다. 추운 곳은 어디나 같으니 결정한 대로 새만금 방조제로 가자고 했다. 33.9km. 바다를 막아 갈라놓았다. 좌측은 육지가 되고 서쪽은 망망대해다. 메워야 할 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다. 정말 겁도 안 난다. 높은 태산이 수없이 들어가 메워도 될 것인가.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다. 저 바다가 육지가 되어 넓은 대지에 구조 있게 건설이 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될 것 아니겠는가. - 새만금에 관광을 가다 (2017.11.18.)          



새만금 방조제를 가신 것 같다. 나도 회사 행사가 그 근방에서 있어서 한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버지의 관광길이 눈에 선하게 보인 듯하다. 아버지 일기를 보면 숫자가 꼭 기록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숫자보다도 보이는 느낌을 주로 표현하는데, 아버지는 특이하게 숫자를 기억하고 표시해 놓았다. 여기에서 ‘겁도 안 난다’는 표현은 방언으로 대단하다는 뜻이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새만금의 모습을 정확한 킬로미터로 표현해 놓았으니, 오히려 그것이 더 빨리 이해가 가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관광차 출발이 7:45분이란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일어나기가 싫다. 6:15 겨우 일어나 하의를 장롱에서 꺼내고 보니 많이 구겨져 있었다. 그것을 내놓고 안사람에게 다려달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급히 다리라고 했는데, 아무 말 없이 다려준 것만 해도 고맙다. 세수를 하고 양말을 찾아 신었다. 아침을 먹고 지갑, 전화기, 모자, 장갑 등을 챙기고 나서니 7:20이 되었다. 큰 동네까지 걸으면 넉넉할 것 같다. 아침 날씨가 쌀쌀하다. 49분에 도착해서 승차했다. 각 부락을 순회하면서 남원을 출발, 여수에 도착. 이순신 대교 2.9km를 달려 전망대에 올라 해상을 바라보았다. - 여수로 관광 가다 (2017.12.15)          



여수 관광을 가시기로 해놓고 아마도 귀찮아하신 것 같다.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간이 다가오니 정신없이 준비하신 모습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주로 어머니를 두고 혼자 가신 것 같다.

한 번은 발전소 근무할 때 부모님을 비롯해서 동생들 가족 전체를 부른 적이 있다. 다른 곳 관광보다 발전소 관광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가족 전체가 만나 하룻밤 사택 넓은 방에서 모두 모여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도 즐거웠고, 발전소 현장에서 높이 100 미터가 넘는 전망대에 모두 올라 내 설명을 듣는 그 시간도 특별했다고 한다. 그런 시간을 몇 번 가졌다. 발전소 주변인 충남 서해안의 여러 볼거리들도 많았고, 특별히 모두가 함께했던 바닷가 먹거리는 기억 속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어머님 팔순이 되던 해 추석 명절이 길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명절을 이제는 집에서 드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드리자고 했다. 팔십 평생 집에서 차례를 지냈던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들의 등쌀에 못 이겨 그렇게 하기로 허락해 주셨다. 간 곳은 바로 고향에서 가까운 곳 섬진강 흙집. 가족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저녁에는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 아들 손주들이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감동의 시간을 만들었다. 낮에는 화개장터로, 섬진강 투어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다른 어떤 관광보다 더 즐거웠다고 그때를 회상하면서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 모든 추억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부모님이 바쁘고 힘든 농촌 일로부터 자주 벗어나게 하고, 가족이 자주 모여 부모님과 함께 어울리면서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자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다. 뒤로 미루지 말고 바로 실행하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최선의 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님한테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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