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hind you May 20. 2019

수의(囚衣)

서초동 법조단지엔 바람이 휘몰아치는 장소가 많다. 법원, 대검, 고검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옆 호송차가 들어오는 곳은 골바람이 분다. 경사로 중턱 터널 형태고, 뒤편엔 산을 끼고 있어서일 게다.


현재 재판 중인 사건의 구속된 수용자는 골바람과 함께 호송차에서 내려 통제된 구역을 통해 법정으로 이동한다. 보통 하루에 두 번. 9~10시, 13~14시에 온다. 오전 공판은 10시 반, 오후 공판은 14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중앙지법과 고법에 오는 사람들은 주로 서울 내에 있는 3곳 서울, 동부, 남부 구치소에서 온다.        


남성, 여성, 젊은 사람, 주름 많은 사람, 머리 벗어진 사람, 백발, 검은 머리, 이웃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복장은 통일되어 있다. 동복 기준으로 기결수 남성은 암청 회색, 여성은 청록색이고, 미결수 남성은 카키색, 여성은 연두색이다. 드물게 정장 등의 사복 차림으로 법정으로 향하는 수용자도 있다. 대부분 수갑과 포승줄로 묶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호송차량에서 내린다. 몇 명씩 길게 묶여 있거나, 개별 이동한다.


취재진이 수용자를 기록할 수 있는 순간은 차에 내려 통제구역 안으로 사라지기까지 약 5~15초 정도 되는 시간이다. 기자를 확인하면 수용자는 얼굴을 돌리거나, 숙이거나, 앞사람 뒤에 바짝 붙는다. 노출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 든다. 아예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도 많다.  


1. 정준영

오전 일정 조율 중 논란이 생겼다. 오늘은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촬영/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가수 정준영의 첫 공판준비 기일이었다.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 측의 입장을 듣고 향후 입증 계획을 정리하는 절차로 피고인은 출석할 의무가 없다. 대부분 피고는 공판준비일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정준영은 출석했다. 호송차에서 내리는 상황을 기록하지 못했으니, 탑승하는 모습을 기록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공판준비기일 취재는 전례가 거의 없고, 재판에서 나오는 정보가 별로 없으니 첫 공판을 기다리자는 의견과 어쨌든 법원에 왔으니 기록하자는 의견이 맞섰다. 이슈가 되는 뉴스의 대상자는 일단 기록해 두는 것이 의무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


2. 변희재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변희재 씨는 4월 9일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지 않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특정 정치인은 호송차 이동시 수갑을 차지 않는데, 본인은 왜 수갑을 착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를 밝혀 달라는 내용이다. 도주 우려가 없는 자는 구치소장 재량으로 수갑을 채우지 않을 수 있다. 변 씨는 바람과 달리 4월 30일 항소심 첫 공판에 수갑을 차고 호송차에서 내렸다.


3. 공익(public interest)과 알권리(Right to know)

언론인이 취재를 위해 많이 거론하는 단어다. 이를 통해 민주화에 기여했고, 언론과 국가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이 같은 공익과 알 권리를 통해 얻는 이익은 공공뿐만 아니라 언론사도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이익은 명확히 구분하고 분리해 내기 쉽지 않다. 보수 매체, 진보 매체 모두 자사의 이익에 정적으로 부합하는 프레임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랜 얘기다.     


4. 낙인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매체는 문자/음성/사진/동영상 4가지 텍스트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중 동영상의 정보량이 가장 높다. 정보량이 높은 만큼 정보의 프레이밍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낙인효과도 크다. 대중은 본 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보량이 높고, 시각성에 기인한 ‘동영상’은 더욱 그렇다. 보통 법조 기사는 사건 발생과 재판 초기 과정에 많이 생산된다. 1심 선고를 정점으로 항소심부터는 보도량이 줄기 시작한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대중의 관심에선 잊힌 경우가 많다. 최종 판결 기사는 단신 몇 줄로 처리된다. 반면 피의자가 되어 체포, 수사받고, 구속되는 과정은 거의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수용자 신분으로 죄수복을 입고, 수갑과 포승줄에 묶인 채로 호송차를 타고 오가며 받는 재판 과정 또한 미디어에 노출된다. 아무리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특정 피고인과 관련해 생성된 90% 이상의 정보는 이미 유죄다.


헌법재판소는 미결수용자가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게 하는 것에 대해 ‘수감 중 수사나 재판을 받기 위해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경우 미결수용자에게 사복이 아닌 재소자 의류를 입게 한 구치소장의 행위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미결수의 인격권, 행복 추구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다.’고 판시했다.     


오늘 정준영은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셔츠와 정장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고개는 숙일 수 있는 만큼 숙이고 걸었다. 수사과정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았었다. 짐작컨대 지금 이 순간이 더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호송차에서 내려 속절없이 노출되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록됨을 피하려는 수용자를 보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저들의 위치에 있지 않음이 다행이고,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정당한 기록 행위인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기록되는 사람은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설 수 있고, 취재진을 피하거나, 기록하지 말라고도 할 수 있다. 공인이 아닌 경우 이미 기록된 것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도소, 구치소 호송차에서 내리는 수용자는 선택을 할 수 없다. 현재 관행은 그렇다.   


공익은 불분명할 수 있으나, 언론사의 이익은 명확해 보인다. 그리고 기록되어야 하는 한 사람과 가족의 상처는 깊고, 날카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준거로 판단하고 기록해야 할까?


 생각해 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YO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