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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hind you May 23. 2019

아버지?


사진전 ‘아버지’에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았다. 한 학기 동안 수업한 학생의 초대였는데, 늘 앞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였다. 잊지 않고 연락해준 것이 고마웠다. 링크로 보내준 중앙일보 기사를 보니 전시회는 인상적일 것 같았다.  


약속 장소를 가려고 보니 전시 장소가 종교단체였다. 이름이 ㅇㅇㅇ협회로 되어있었다. 전시공간이란 것이 비용이 꽤 투입될 테니 협조를 받았나 보다 생각했다. 건물은 높고, 넓었다.  


1층에 들어서니 ㅇㅇ님의 초대로 오셨냐고 묻는다. 내가 다녀본 전시회와는 뭔가 시작부터 달랐다. 관람을 위해선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대기 장소는 3층 예배당이었고, 종교단체의 홍보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500명 넘게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예배당이었다. 홍보 동영상은 이 단체의 규모와 업적을 알리는데 목적이 있었다. 국제적인 봉사상 수상 실적과, 피구호자의 감사 인터뷰, 저명한 신도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회라는 공간 안에 있는 것이 불편했지만 이런 기독교 종파가 있다는 사실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대기 번호가 스크린에 투사되었고, 6층으로 올라갔다. 우는 분들이 많다며 입구 안내데스크 옆엔 휴지가 있었다. 좀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영리,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있었다. 각 층마다, 입구마다 여럿이 정장을 차려입고 안내를 하고 있다.  


전시는 크게 5개 섹터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사진과 영상, 글귀, 아버지들이 사용하던 물건들로 꾸몄다. 희생하는 아버지들의 스토리는 쉽게 공감되었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버지들의 이야기는 노동자 이야기였다. 절반 정도 둘러보았을 때 다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6~80년대에 활동하던 아버지들이 주 대상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고생하고, 희생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민주화에 기여한 아버지들도 많았을 텐데 왜 노동자로서의 희생과 가족에 대한 헌신만 키워드로 꼽았을까. 섹터 5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이 절대적인 희생과 헌신을 하나님 ‘아버지’와 맥락 짓고 있었다. 그랬다. 이것은 예술을 이용한 정교화된 설득 시스템이었다. 전시 관람 후 4층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을 주제로 한 3부작 동영상을 25분간 시청했다. 그리곤 전도사라는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하곤 2,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쯤 오늘은 ‘일기를 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에 대해 별달리 생각해 본 적은 없다. 5살에 엄마 손에 끌려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에 갔고, 성년이 되도록 다녔다. 사탕이나 초콜릿을 얻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헌금 백 원을 내지 않으면 오락도 두 판 할 수 있었다. 특정 시점은 기억이 불분명 한데 7~9살쯤 크리스마스 연극에 배우로 출연하게 되었다. 배역은 잠깐 등장하는 동방박사 셋 중 하나였고 대사는 한 문장이었다. ‘저는 몰약을 드리옵니다.’ 이 간단한 대사가 서툴렀는지 연출하던 여성 신도에게 맞았다. 머리를 손이나 물건으로 맞았는데, 아파서 울었다. 어떤 집단 속에서 처음으로 당한 폭력으로 기억한다.  


소년부 시절엔 여름에 수련회라는 것을 했는데 여러 프로그램 중 미로처럼 공간을 만들어 두고 지나가는 시간이 있었다. 좁은 길에 예수님 초상을 몇 장 깔아 두고 지나가라고 했다. 왠지 밟고 지나기 죄송해서 고민하니 중간중간 있는 성인 신도들이 이 길밖에 없으니 그냥 지나가라고 한다. 그리고 최종 도착지에 모아 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해하란다. 아이들 마다 기억이 다르니 조목조목 설명해 줬다. 밟고 지나간 것에 대해 울면서 회개 기도를 해야 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습관처럼 다녔고, 성년이 되었다. 목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랑’이었다. 서로 사랑하라. 좋은 말이다. 수년간 설교를 하던 목사에게 교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는데, 한 번도 인사를 받은 적이 없다. 어려서 잘은 몰랐는데, 모순적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설령 얼굴을 모른다 할지라도 교회라는 공간 내에서 인사하는 사람을 그렇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술집에서 교인을 만나면 서로 얼굴을 감추는 것도 힘들었고, 만날 때마다 우상 논란을 듣는 것도 어려웠다. 한 전도사는 노란 스마일 배지도 우상이라고 했다. 사실 여부는 관심이 없다. 시작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나, 성년이 된 기념으로 내 의지로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군 복무 시절엔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잠시 교회와 절을 기웃거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난 2019년 4월 29일. 한국 주류 개신교단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기독교 계통의 신흥종교 공간을 다녀왔다.


사탕과 초콜릿, 초코파이가 아닌 ‘전시’라는 것에 고리가 걸렸다. 두 시간 동안 관찰한 그 집단의 설득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상당히 정교했다. '하느님 -> 아버지 -> 하느님 -> 아버지 -> 구원' 키워드 순으로 짜여있고, 각 단계는 훈련된 전문가들이 최대한 종교적인 인식이 들지 않도록 결과물들을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봉사하는 집단이고, 인류에 헌신하며, 투명하게 운영되는 단체이다. 당신들 아버지처럼.


종교와 관련된 행사에 아무런 양해 없이 초대한 것은 큰 실례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위 프로그램을 순수한 ‘전시’ 정도로 알았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만약 알았다고 해도 그들에겐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을 나누고자 한 행위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나에 대한 대략적인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초대하도록 하도록 세팅한 설계자들이 더 클 것이다. 이들 설계자들의 주된 설득 행위는 ‘권위’를 이용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진실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과 종교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던가. 저녁자리에서 종교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던가. 부디 종교와 관련된 시공간으로 이끄는 행위는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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