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잠금의 시작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민주통합당 의원 몇 명과 경찰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오피스텔 607호 앞에 들이 닥쳤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원 직원이 이 오피스텔에서 댓글 조작을 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민주당과 경찰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28살의 연약한 여성을 미행하고 사실상 감금했다"며 "여성을 집에 가둬놓고 부모님도 못만나게 했다. 심지어 물도 밥도 끊어버렸다. 여성인권 침해에 대해서 한마디 사과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문재인 후보측에 대해 "허위사실로 국민을 호도하며 선거에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선거를 며칠 앞둔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박 후보의 이 같은 주장을 듣고선 어이없어 하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표정이 생생하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국정원 직원을 두둔하는 그 자체가 수사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후보가 경찰에 "너네 여기까지만 수사해"하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모든 언론은 '셀프잠금'이냐 '감금'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다 큰 성인이, 그것도 입사 후 6개월동안 특수교육을 받는 공작원이 연약하다고? 본인이 잘못한 게 없으면 국회의원들을 가택침입죄로 고발하면 그만인 사건이었다.
결국 민주당의 급습 5일 만인 12월 16일 밤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정원 직원의 PC와 노트북 등에서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총선 때 최대 이슈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혜경궁김씨 관련 수사가 아직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빛의 속도로 수사가 나온 셈이다.
결국 이로써 박근혜 후보는 면죄부를 받았고 결국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후인 2016년 7월 6일 법원은 '국정원 요원감금 혐의'를 받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감금'이 아니라 , '셀프잠금'이 맞다는 판결이다. 국정원 요원이 문을 열지 않고 오피스텔에 있던 2일 동안 셀프로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셀프잠금(정보기관의 댓글조작)에서 시작됐다는 얘기다.
임기 내내 이어진 셀프잠금
물론 셀프잠금의 원조는 따로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의 임기 4년 1개월 동안 셀프잠금을 단행했다. 그는 대면보고를 싫어했다. 사람을 만나질 않았다. 부모를 흉탄으로 잃었고, 자신도 커터칼 테러를 당했던 터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정치는 총의를 모으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종합해 국가의 방향과 비전,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종합 예술이다. 특히나 대통령이란 자리는 정치행위의 결정체에 해당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지향점을 제시해야 하는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이란 얘기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의 참모인 청와대 비서실장, 장관들로부터도 '셀프잠금'을 단행했다. 참모 중의 참모에 해당하는 대면보고를 자주 하지 못했다니 말해 뭐하겠는가. 수사결과와 청와대 요리사 등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자신의 침실이 있는 관저에서 주로 머물렀다고 한다. 참모진들이 머무는 비서동(왼쪽 화살표)과 관저(오른쪽 화살표), 500m에 불과한 이 공간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한 외딴 섬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는 '관저 집무실'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사실 현대인들은 굳이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 모든 업무가 전산처리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핸드폰도 있고, 집에 노트북 하나면 충분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루에 2시간씩을 출퇴근에 허비하며, 또 요즘과 같은 장마철에 매일 같이 신발과 옷 전체가 흠뻑 젖어 퇴근해야 하는 우리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실 회사 오너는 매일 집무실에 나갈 필요가 없다. 알아서 각 그룹사 사장이나 비서진들이 보고를 해오고 연락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 오너가 아니기 때문에 '자택 근무실'을 만들 수 없다. 이것만 봐도 박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본인의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난다.
스스로 선택한 셀프잠금
사실 그에게도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JTBC의 '태블릿 PC 문건 유출' 사건 보도 이후 촛불민심이 들불처럼 일어나 "박근혜는 하야하라"를 외쳤을 때가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하야를 원하는 촛불민심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이후 이듬해인 3월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 선고를 받을 때인 92일 동안 '셀프 잠금'을 멈추지 않았다. 만일 그가 중간에 하야라는 카드를 선택했다면 지금과 같이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징역을 살아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민들의 측은지심이 발동해 법정형 만을 면하지 않았을까.
현재 그는 마지막 셀프잠금에 들어간 상태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지난 24일 서울고법 형사4부는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그에게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외부인과 차단했던 그의 삶. 국가정보원의 한 직원의 셀프잠금에서 시작돼 영원한 셀프잠금에 들어간 그의 삶. 현대사를 사는 한 시민으로서 매우 안타깝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