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도 4대 구조개혁 하자

by 캘리박

박근혜 정권의 경제 혁신 슬로건은 4대 구조개혁이었다. 노동, 교육, 공공, 금융 등 4가지 분야에 비효율이 만연해 있는 만큼 제대로 된 구조개혁을 통해서 우리 경제를 좀 더 튼튼하게 체질개선하자는 것이었다. 정부의 모든 보도자료와 쏟아져나오는 기사, 사설, 칼럼에 4대 구조개혁이라는 단어가 기본값(Default)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서 무한대로 돈을 찍어내던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전에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망국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무시무시한 글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구조개혁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인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 비효율과 방만함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통해 지대추구(rent seeking)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모두 결과를 알다시피 4대 구조개혁이라는 슬로건은 지난 정권과 함께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나는 우리의 경제 구조상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면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것이 비단 해고와 구조조정이라는 무시무시한 도구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혁신가들이 나타날 수 있는 토대를 우리 사회 전체가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 전체의 공리로 따져볼 때 긍정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지난 정권 내내 4대 구조개혁을 외쳤던 언론사가 스스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고나 협찬에 기댔던 매출구조에서 탈피하고, 각종 포럼이나 조찬모임을 통해서 기자들에게 압박을 주는 일도 지양해야 한다. 그토록 찬사하는 실리콘벨리 기업들과 실리콘벨리 기업들의 창업자들과 같이 언론사의 경영진들도 혁신의 DNA의 스스로 내면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언론 경영은 난파선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일한 경영자원인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에게 단순히 월급을 많이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사의 구성원이자 유일한 경영자원인 기자들이 스스로 어깨를 펴고 전문가들과 팩트를 놓고 언쟁을 벌이더라도 논리싸움에서 지지않을 정도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훈련과 물적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사람은 없는 상황에서 각종 취재발제와 온라인기사처리 협찬기사, 포럼, 조찬모임 등을 전부 기자들에게 일임하는 것은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라고 본다. 똑똑한 친구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해서 바보가 되기 딱 좋은 구조다. 기자들은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취재원에 대한 거들먹거림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아주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성취감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얘기다. 만일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고 되레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쪽으로 흘러가거나, 기자인지 영업맨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의 경계가 허물어진 언론구조의 구성원을 지속하는 것이라면 기자들의 언론사 이탈은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결국 언론사의 유일한 역량인 인적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자들도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사실 언론사라는 건물 외형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개개인이 프리랜서 형식으로 핵심 정보를 쥐고 독자(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 창과 방패와 갑옷을 벗고 자신이 갈고 닦은 무술 실력만을 갖고 옥타곤에 들어서는 UFC 선수들과 같은 형태로 바뀔 것이다. A 언론사의 누구 기자가 아니라, 개인이 기자이자 언론사인 시대가 이미 시작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자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상대하는 취재원이나 소비자인 독자들은 일반 기자들의 지적 수준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단순한 글의 화려함이 아니라 탄탄한 지적 역량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다. 이는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자극적인 떡밥을 던지면서 구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일부 유튜버들의 전략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봐도 언론이라는 기능 자체는 필요하다. 만일 언론인이 우리 사회에 아예 사라졌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매일 질병관리본부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진자 숫자와 확진자 동선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오늘 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세법개정안이나 주택정책, 금융 정책 등 내 사업과 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정책들도 일일이 정부부처 사이트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다운 받아서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전부 읽어야 한다. 이 정책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지 해석은 오롯이 당신 스스로 해야 한다. 만일 누군가 해석을 해서 블로그에 올린다거나 페이스북에 올린다면, 그들이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언론사라는 형태와 껍데기는 사라질지 몰라도 언론인은 계속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새로운 시대에 언론인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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