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총기문제
미국에서 와서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미치광이가 나타나서 총기 난사(mass shooting)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 정신이상자가 나타나서 칼부림이나 총을 발사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상존한다. 길을 걷다가도, 자전거를 타고가다가도 뒤를 힐끔 힐끔 쳐다보게 된다.
물론 24시간, 7주일 내내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곳 미국 땅에서 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긴장감,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했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미국에서 발생한 mass shooting과 관련한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의구심은 '대체 왜 매장마다 경비(security)를 두지 않는 거지?'였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웬만큼 규모가 있는 크기의 식당에는 전부 총을 차고 있는 security가 입구에 서 있다. 물론 랄프, 코스트코 등과 같은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노드스트롬과 그로브몰에도 security들이 있다. 파머스마켓에도 security들이 돌아다닌다.
문제는 mass shooting 범죄가 일어날 경우 1차 희생자(victim)의 발생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mass shooting은 대부분 범인이 기관총을 들고와서 특정 장소에서 벌이는 범죄다. 내가 관찰해본 결과, 유명 매장에 있는 security들은 권총을 차고 있다. 매장 주인이나 security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발생할지도 모르는 범죄를 막기 위해 항상 무거운 기관총을 들고 근무를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security의 가장 큰 역할은 잠재 범죄자의 범죄를 예방하는 것 같다. '내가 이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곧바로 이들의 손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말이다.
지난주 저녁 그로브몰에 갔다가 한 청년이 나이키 매장에서 물품을 훔치다가 걸려서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타는 모습을 봤다. 만일 그 청년이 격렬하게 저항을 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그로브몰에 갔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모습이지만 나는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봤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면 항상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미국은 왜 총기규제를 하지 않는 거죠" "총기협회가 정치권을 다 매수해서 그런거죠" "수정헌법에 따르면..." 이런 식의 글이 도배되곤 한다. 한국에 살 때 나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곤했다. 한국에서 전화영어를 할 때 몇 십정의 총이 있다고 자랑을 하던 미국 여성과 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저게 자랑할거리라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스위스의 국제 무기조사 기관 ‘스몰 암스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에는 개인이 소유한 총기가 3억9,300만정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가 3억4,000만명이니 인구 1명당 최소 1정 이상의 총기를 소유한 셈이다. 어쭙잖은 생각을 해본다면 현재 시중에 풀려 있는 총기를 다 거둬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총을 잃어버렸다'며 땅에 묻거나 할 수도 있다. 오히려 수면 아래로 숨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총기 소유를 금지할 수 없다면 총기 소유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총기를 거래하는 사람들을 미 정부가 계속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주기적인 정신병력 조회 등을 통해 마약을 하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 등도 필요하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은 이미 미국이 갖추고 있을 것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일 터. 총기 문제..엉킬대로 엉킨 실타래처럼 좀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물론 최근 한국에서도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피해 규모나 확장성 등을 생각해 볼 때 칼과 기관총 등의 무기는 엄연히 차원이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