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머니는 이미 얇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어떠니?" "여기는 장마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야. LA 날씨는 어때. 좋지?"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전화를 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현재 내가 느끼는 미국 날씨에 대한 감상은 '너무 좋다'이다.
4주 전 미국에 오면서 느낀 미국 날씨는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하다는 점이다. 밤에는 살짝 추울 정도다. 그 이유는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습도가 낮아서 땀이 나질 않는다. 높은 습도 때문에 수시로 에어컨을 켜고 꺼야 하는 한국과는 환경이 다르다.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집 블라인드가 들썩 거려서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청량한 바람이 많이 분다. 나는 지인과 통화를 하며 "강원도 계곡에 갔을 때 부는 바람이 계속 부는 것 같애. 날씨 정말 끝내줘"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습도가 낮은 미국 날씨의 장점은 기후변화와의 화학적 결합으로 골칫거리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데다 가뭄마저 극심해지는 탓에 쉽게 산불이 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 기사를 통해 캘리포니아 산불과 관련한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로컬 뉴스들을 보면 산불 기사가 엄청난 분량을 차지한다. 현재 미국 서부 전역에 거주하는 약 3,000만명의 주민에게 폭염 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올해 1월부터 서울 면적의 약 1.4배에 달하는 839㎢ 규모의 캘리포니아 일대가 산불로 피해를 봤다.
우리가 각종 미드와 리얼다큐에서 수없이 봤듯이 캘리포니아 일대 부자들의 상당수는 힐(hill)에 산다. 주택 앞에서는 수영장이 보이지 않지만, 뒷마당에는 수영장을 끼고 있는 건축 구조다. 주택이 산에 걸터 있는 구조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소득층의 주택이 일반 주택과 비교해 화재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6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산불이 발생해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집이 상당수 전소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화 '300'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 제라드 버틀러는 캘리포니아의 부자 동네 말리부에서 전소된 자신의 주택을 배경으로 찍은 셀피(셀프 카메라)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당시 화마로 피해를 입은 유명인은 제라드 버틀러 뿐만이 아니다. 올랜도 볼룸과 킴 카다시안, 레이디 가가 등이 산불로 인해 집을 버리고 피난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산불 화재의 영향을 덜 받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덜 느낄 수도 있다. 그냥 '예년보다 날씨가 좀 덥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 내 보수적인 정치권과 사업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후변화는 사기(Climate change is hoax.)'라는 말을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본토 넓이 가 너무 넓어서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 사고 등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연구결과들은 기후변화가 분명한 사실이며, 현재와 미래에도 우리 삶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란 사실을 수치로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있는 연구 기관 '브레이크스루 연구소'(Breakthrough Institute)의 기후·에너지팀은 기후변화로 캘리포니아주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할 위험이 25%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 책임자인 패트릭 브라운은 "뜨거운 열로 인해 대기가 토양과 식물에서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초목이 건조해져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우리가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노력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인다 해도 수십 년 안에는 산불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는 2070년대에 탄소 배출량이 0이 되는 '넷 제로'에 도달한다고 가정해도 세기말까지는 산불 발생 위험이 평균 59%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2070년부터는 탄소배출량과 제거량을 제로(0)에 맞춘다고 하더라도 산불 위험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기후변화는 당장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삶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상이 된 탓에 주택 보험사들이 연간 20%가 넘는 보험료율 인상안을 내놓다가 못해 '이제는 캘리에서 주택 보험 영업을 하지 않고 다른 주로 영업 반경을 선회하겠다'고 나설 정도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테이트팜'이나 '올스테이트' 같은 대형 보험회사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신규 보험을 들어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아예 스테이트팜은 7월부터 기존에 가입된 7만2,000가구의 건물 보험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올스테이트는 최근 캘리포니아 보험국에 올해 주택 보험료를 34% 인상하는 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캘리에서 영업 못하겠으니 보험료를 내려면 내고 말려면 말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험사들은 왜 캘리포니아를 떠나려는 것일까. 그 원인은 엄청난 '보상금'에 있다. 캘리포니아주 부동산중개인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캘리포니아주 단독주택의 중간가격은 90만4,210달러다. 한화로 12억5,249만원에 달하는 수치다. 물론 이는 평균 가격에 수렴하는 수치다. 이른바 부자 동네로 불리는 지역, 힐(hill)에 위치한 지역의 주택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택 소유주들로부터 받는 보험료 갖고는 작게는 수십억원에 많게는 수백억원에 육박하는 주택(수십채에서 수백채)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할 수가 없다. 화마는 한꺼번에 불어닥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기사가 주택 보험료 때문에 못 살겠다는 내용이다. 퇴직 후 이른바 '똘똘한 한채'의 주택만 갖고 살아가는 노년층부터 신혼부부에 이르기까지 연일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는 주택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일 치솟는 보험료는 임대(렌트)에서 자가로 갈아타려는 예비 주택 구매자들에게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조한 날씨와 가뭄 탓에 화재가 늘면서 캘리포니아 당국도 각종 건축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주 당국과 각종 연구보고서, 현지 언론 등은 화재로 인한 손실을 피하기 위해 지붕과 외벽, 데크, 조경 등을 리모델링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같은 '산불방지용 리모델링'과 신규 주택 건설은 또 다른 부담으로 사람들의 통장을 줄어들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LA 시내를 다니다가 보면 리모델링을 하는 주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한국에 살면서 미세먼지, 황사, 갑작스런 폭우, 폭염 등 때문에 한국만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청량한 날씨와 미세먼지 없는 공기 등은 미국이 가진 천혜의 장점이지만, 미국인들도 자기가 모르는 사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핸 준조세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각 개인이 기후변화를 인정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기후변화와 상관없어. 환경오염과 나는 연관없어.'라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더라도 당신은 여러 형태의 준조세로 환경부담금을 이미 부담하고 있다. 관건은 모두가 연합해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