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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Dec 13. 2018

트럼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통점

미국 백악관 고위 관리의 뉴욕타임스(NYT) 익명 기고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최고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임기 내내 트럼프 대통령을 괴롭혀 온 '러시아 게이트(2016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 정부와 트럼프 대선 캠프 간의 공모가 있었다는 내용)'의 몇 배에 달하는 파장을 낳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5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리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NYT에 '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레지스탕스'라는 익명 기고를 올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에 매우 부적합하고, 충동적이고 적대적이며 옹졸한 대통령"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해 초 백악관 고위관료들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는 것도 검토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칼럼은 현재 조회수 1,000만뷰를 훌쩍 넘겼고, 워싱턴 정가는 그야말로 혼돈에 빠져들었다. 

화가 잔뜩 난 트럼프는 칼럼이 공개된 이후 "반역인가?” “행정부 고위 관료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나, 아니면 망해 가는 뉴욕타임스의 또 다른 거짓 취재원인가” “용기 없는 익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면 뉴욕타임스는 국가 안보를 위해 이 사람을 즉시 정부에 넘겨야 한다”라고 트윗을 날렸다. 그리고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을 향해 "익명 칼럼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단 트럼프의 트윗은 모순점이 있다. NYT가 거짓 취재원의 칼럼을 만들어 냈고, 그 글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트럼프는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칼럼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국가안보'에 배치된다며 칼럼을 쓴 사람을 색출할 것을 법무부 장관에 종용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20여명이 넘는 고위 관료들이 "나는 칼럼의 기고자가 아니다"라며 트럼프에게 소위 충성 맹세를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불현듯 4년 전이 떠올랐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을 대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태도와 트럼프의 행동이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정윤회씨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 3인방과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을 퍼뜨리는 등 국정에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특종이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계일보의 '정윤회와 십상시 문건' 보도를 찌라시로 규정했고, 청와대 문건이 공개된 것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신문 보도가 찌라시를 보도한 거니 잘 알아서 해'라고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에도 모순점이 있다. 세계일보는 청와대 문건을 보도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문건을 "찌라시에 나오는 것을 보고 만든 것"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공무원이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를 청와대 문건으로 만들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는다. 결국 청와대 문건은 찌라시를 참고해 만든 것이고, 이 찌라시를 청와대 고위 간부에 보고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파급력이 있는 찌라시? 그런 찌라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취재 중에 사실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기사를 쓰는 게 기자의 생리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직접 만든 문건이라..청와대에서 이 문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게 어떻게 '문건유출'로 물타기가 되나. 하지만 당시 문건을 만든 박관천 전 경정은 문건유출 혐의로 500여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박 전 대통령의 말이 옳다면 박 전 경위는 허위사실 보고로 청와대 내부에서 문책을 먼저 당했어야 옳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슷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대한민국과 미국. 각각 1952년생과 1946년생으로 나이차도 많이 나는 이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우선 두 사람은 모두 극우주의자에 가깝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불행하게도 분노와 피해망상의 정치가 공화당에 둥지를 틀었다"며 "이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들의 분노를 활용해 갈등과 분열을 낳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를 두고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반대 시위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답변해 사실상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옹호했다. 이에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중 하나인 KKK 대표를 지낸 데이비드 듀크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직하고 용기 있게 샬러츠빌 사태의 진실을 말하고 좌파 테러리스트들을 비판한 것에 감사하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2012년 9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인혁당 사건의 판결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말했다. 

1975년 사형판결 이후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2007년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말해 사법적으로 다퉈볼 부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된 것"이라며 "상처와 피해를 당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사과드린다"는 말을 했지만, 후폭풍이 커진 후 나왔던 사과였던 만큼 "두 개의 판결"이라는 최초 발언이 본심에 가깝울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임기간 청와대가 전경련 등을 동원해 극우단체를 지원했다는 내용은 수사 결과를 통해 익히 알려진 바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외부에 노출한다. 새벽 시간마다 트위터를 통해서 정적들과 언론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며, 기자회견도 무척 자주한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골프장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도 중계한다. 요즘 말로 관종에 해당한다. 

박 전 대통령은 트럼프와 정반대에 해당한다. 박 전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국민들은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참모진들과도 접촉을 꺼렸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임기 내내 단독 인터뷰는 탄핵 이후 정규재TV에 출연해 "뭔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이 기자회견을 했던 것은 JTBC의 '테블릿PC 문건유출' 보도 이후 3차례 했던 대국민 담화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아,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충족하지는 못했다. 차라리 기자들을 들러리로 세우지 말고 청와대 직원들이 찍은 녹화방송을 내보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다. 권력을 향해 언론이 얼마만큼 비판과 견제를 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선 트럼프가 이끄는 백악관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는 '딥스로트(내부고발자)' 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현직 고위관리의 NYT 익명기고에 이어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백악관 내부의 혼란을 폭로한 책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또 과거 방송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백악관 참모로 발탁됐다가 최근 사임한 오마로자 매니골트 뉴먼(43) 역시 출간을 앞둔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던 당시 N 단어를 자주 사용했으며 이를 입증할 테이프도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출간돼 백악관의 난맥상을 최초로 폭로한 언론인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트럼프 백악관의 내부’는 백악관 고위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한 정신상태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이클 울프는 미국 CNN, 영국 BBC방송 등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인들은 100% 그의 지능과 대통령 자격을 의심하고 있으며 그를 어린아이 같다고 평가한다”며 “이 책에 실린 폭로가 트럼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박 전 대통령 임기 시절엔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았고, 언론도 제대로 비판을 하지 못했다. 세계일보의 최초 보도 이후 언론이 '문건 유출자'라는 프레임이 갇히지 않고, 청와대 내부 권력에 대해 따끔하게 비판을 가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또 내부 고발자들이 나와 최순실 등 비선권력의 속살을 제대로 알렸다면. 역사의 가정은 없다지만 무척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취임 이후 가장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갈지 지켜보자. 트럼프 대통령의 안위는 한반도의 평화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만큼 주목해야 할 이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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