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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Dec 13. 2018

몸이 망가져야 하는 직업, 기자


“기자는 몸이 망가져야 하는 직업이야”

3개월간 인턴을 했던 언론사의 10년 차 선배가 당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라고 생각했다. '몸이 망가져야 한다니. 그런 직업(일)을 왜 해?'

하지만 다음해 언론사에 정직원으로 채용된 이후 그 선배가 무슨 말을 했던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언론사에 처음 사하고 나니 회사 선배들과 술을 많이 마셨다. 기수별 대면식, 부서장, 편집부, 회사 총무팀 등 처음 몇 주 간은 계속 점심, 저녁 술이었다. 물론 나의 주량은 소주 1병 정도로 많지 않은 편이다. 선배들은 예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원래 술이 약했던데다 대학 때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나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매일 이렇게 어떻게 살지?"


기수별 대면식을 하는 어느날 나보다 다섯 기수(실제로도 5살이 많은)가 많은 선배가 술잔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제 몸처럼 되지 않으시려면 몸 관리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기자는 몸이 망가져야 한다고 말했던 선배와 이 선배가 몸매가 비슷했다. 원래 체형은 말랐지만 급격히 살이 찐 듯한 몸. 그 선배가 몸이 망가져야 하는 직업이라고 기자를 설명한 것은 매일 같이 반복되는 밥과 술 문화 때문이었다.

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각 출입처에 배정되면 연락을 돌려서 약속을 잡는다. 새로 출입하게 된 출입처에 어떤 사람이 있고, 현안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업무를 파악하고 또 기사거리가 될만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한 절차(?)다. 특종도 ‘내가 오늘 특종을 써야지’라고 쓰는 게 아니다. 매일 점심, 매일 저녁 다른 사람을 만나다보면 최소공배수를 찾게 되고 이 같은 트렌드를 글로 쓰다보면 특종이 잡힐 때가 있다. 이를 위한 수단이 바로 밥과 술이다.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 얘기를 활발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선 점심에 맥주 한두잔을 마시기도 한다. 취재원이 호탕한 성격인 경우에는 먼저 "폭탄주 한잔 할까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제가 오후에 일을 해야 되서요”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기자가 갑질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기자는 철저히 을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으면 한 마디도 쓸 수 없다. "그는 말을 안했다. 그는 기자의 물음에 대답을 안했다"라는 기사만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뭔가 기사 거리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정보보고 거리라도 올리려면 술자리에서도 무척 긴장해야 한다. 그래서 겉으론 술을 마시면서도 웃고 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기억하기 위해서.  

매일 이런 생활을 하면 몸이 불 수밖에 없다. 오늘 술 마시고 퇴근했는데 다음날도 부득이 하게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니가 취재를 못하니까 그랬겠지 라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겠지만.. 아주 보수적으로.. 최대한 안 마시려고 했을 때도 일주일에 2~3번은 마시는 것 같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운동이라도 해야 되는데 너무 피곤하니 집에 가서 그냥 자버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끔 같이 스터디를 하거나, 기자 입사를 같은 시기에 한 타사 동기들을 몇 년 만에 만나면 너무 급격하게 살이 쪄서 놀랄 때가 있다. 최근에 입사해 갓 수습 딱지를 뗀 남자후배가 몸이 많이 불어서 물어보니 “10키로가 쪘다”고 답했다. 입사 7개월 만에 10키로나 쪘다니 놀랠 노자다.

1년에 꼭 한 두번씩은 점심에 만취한 상태로 기사를 써야 할 때도 있다. 점심에 폭탄주를 몇 잔 돌리다 보면 술이 약한 탓에 그냥 자고 싶어진다. 그냥 잠들어도 저녁까지는 스트레이트로 잘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기자는 마감이 있는 직업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룰 수가 없다. 무조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써야 한다.

류시화 시인의 작품 제목이 생각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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