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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May 19. 2019

인보사 사태, 대국민 사기극인가 실수인가  

3월 31일 일요일 오후 1시 13분이었다. 출입처를 맡은 지 한 달이 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문자가 하나 날라왔다. 유전자 치료제 잠정 판매중지에 대해 보도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제약, 바이오 업계를 맡은지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아서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데다가 황금 같은 일요일에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업슴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식약처는 세계 최초 유전자 관절염 치료제이자 국내 블록버스터 바이오 치료제였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에 대해 판매중지 결정을 내렸다. 1면 스트(스트레이트를 기자들은 스트라고 부르곤 한다)에 박스(해설 기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식약처에서 자료를 너무 늦게 배포했다는 점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신문사는 기자들이 4시까지 기사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데스크가 기자를 수정(데스킹)하고, 그래픽팀에서 그래픽을 만들고, 편집기자들이 레이아웃과 제목을 달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자료를 4시에야 배포했다. 그날 데스크를 맡았던 차장 선배로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냐고" 자료를 배포를 안했는데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는 1면과 박스기사 9매를 막아야 했다. 미리 기사를 써놓지 않으면 도저히 지면을 마감할 수 없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성분이 변경된 것이 드러났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결국 4시부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기사를 써야 했다. 가족 나들이를 나가려던 나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3월 31일 바로 이날부터 인보사와의 질긴 악몽은 시작됐다.


인보사는 사람의 연골세포(HC)와 ‘TGF-β1’ 유전자를 도입한 형질전환세포(TC)를 3대1로 섞어 무릎 관절강에 주사하는 세포유전자 치료제다. 식약처는 “애초 TC의 허가사항은 유전자가 포함된 연골세포였으나 유통 제품은 TGF-β1 유전자가 삽입된  태아신장유래세포주(293유래세포)가 혼입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인보사에 대한 제조·판매를 중지했다.


4월 1일 코오롱생명과학은 서울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기자회견장에는 나를 포함해 제약바이오업계를 출입하는 무수히 많은 기자들이 모여 들었다. 모두 벙찐듯한 표정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냐"며 수근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날 코오롱은 인보사가 지난 2004년 최초 허가를 받은 후 임상 및 상업화 전 과정에서 동일한 성분을 사용했지만 이렇다 할 부작용 보고 사례가 없었다며 사용된 세포의 명칭만 달라진 것일 뿐 안전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인보사를 많이 성원해주신 바이오 업계 종사자들과 학계, 정부 부처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인보사의 성분이며 저희는 이름표를 잘못 붙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오롱은 2004년 TC의 특성을 분석해 식약처로부터 승인을 받을 당시 연골세포의 특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전임상과 임상 등의 단계를 거쳐 2017년부터 국내 판매에 들어갔고 현재 미국에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최신 유전자 검사기법 가운데 하나인 STR검사법을 진행한 결과 연골세포가 아닌 293유래세포의 성분이 나타났다는 게 코오롱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연골세포가 아닌 293유래세포의 성분이 나타난 원인에 대해 코오롱에서 어떤 해명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한 부분이 많지 않고 현재 조사를 하고 있다”며 “실수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태가 공론화된지 2주 뒤인 4월 15일 식약처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 유통되는 인보사의 형질전환세포(TC)가 미국 검사 결과와 동일한 신장세포(293유래세포)임을 확인한 것이다. 식약처는 5월까지 코오롱생명과학의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의 미국 법인에 대한 현지실사까지 벌이기로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 9일 세포·유전자 치료제 분야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 개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허가 당시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출한 자료는 연골세포로 판단되지만 현재 시판 중인 2액의 주성분이 293세포로 바뀐 경위 및 이유에 대해 추가로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4월 26일에는 '인보사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는 국회로 달려갔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였다. 윤소하 의원을 비롯해 시민단체에서는 강렬한 비판이 이어졌다. 윤소하 의원은  “성분 자체가 다른 의약품을 만든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정부 당국과 회사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인보사 사태는 황우석 사태에 못지 않은 위험신호”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허가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만큼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병수 성공회대 교수 역시 “중앙약사심의회에서 인보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만큼 임상결과의 모든 원본(raw)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식약처의 미국 실사결과를 주목하는 사이 또 하나의 악재가 터져 나왔다. 코오롱생명과학의 미국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이 이미 2년 전에 2액의 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알았다는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코오롱티슈진은 지난 3일 저녁 공시를 통해 “(인보사의) 위탁생산 업체(론자)가 자체 내부 기준으로 2017년 3월 1액과 2액에 대해 생산 가능 여부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STR(유전학적 계통검사) 위탁 검사를 해 2액이 사람 단일세포주(293유래세포)이며 생산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생산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코오롱생명과학에 통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들어서야 인보사 성분이 바뀐 사실을 알았다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주장과는 전면 배치되는 대목이다.

 

최근 코오롱생명과학은 유전자치료제 인보사를 투여받은 시술환자 전원을 대상으로 15년간 장기추적 조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총 대상은 3,700건으로 장기 추적 조사에는 약 8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5년간 인보사를 신약으로 개발하는 데 투입된 1,000 여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사실상 인보사에 코오롱생명과학의 명운이 달렸다는 얘기다.


인보사를 투여한 환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법무법인 오킴스가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인보사 투여 환자를 모집한 결과,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환자는 100명을 훌쩍 넘긴 상태다. 지난달에는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코오롱생명과학과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식약처를 직무 유기 혐의로 수사해달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식약처 관계자들은 당장 20일께 미국으로 날라가 현지실사를 벌일 예정이다. 행정처분 여부에 대한 결론은 6월 초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과연 인보사는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될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지 한국 제약, 바이오 업계는 엄청난 내상을 입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인보사를 투여한 환자들의 안전이라는 점도 다시 한번 강조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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