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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May 31. 2019

'인보사 브리핑' 후기··“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5월 27일 월요일 오후 5시 11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문자 하나가 날라왔다. 내일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에 대한 조사 결과 발표 브리핑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데스크에게 내일 오전 10시30분에 식약처가 관련 내용을 발표한다는 보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코레일 앱으로 오송역으로 갈 KTX 열차를 예매했다. 이게 얼마 만에 내려가는 오송이던가. 2년 만에 오송에 가는 구나.

다음 날 무척 피곤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살을 빼야 한다는 나와의 약속 때문에 강남까지 가서 격투기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5월 28일 새벽. 오늘은 결전의 날이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크린토피아에 맡겼던 빳빳한 양복을 꺼내입었다. 굳이 그렇게 의관정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양복을 입고 거울을 보면서 마치 전장에 나가는 계백과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지긋지긋한 인보사 이슈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겠지?’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서.

오랜 만에 탄 KTX는 예전 그대로였다. 서울을 빠져나가며 3년 전 늘상 봐왔던 풍경들을 마주하면서 ‘아 내가 세종에서 3년 동안 살았었구나’라는 걸 다시 되새겼다. 드디어 오송역에서 내렸다. 이전에 있던 커피숍 등은 망해서 사라지고, 핫도그 집도 사라졌다. 약간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식약처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가야 했지만, 심각한 길치라 반대 방향으로 종종 버스를 타는 실수도 저지르기 때문에 택시에 올랐다. 몇 분 안돼 식약처가 눈에 들어왔다. 세종에 살 때 몇 번 지나쳐 갔던 클러스터 안에 있던 그곳이 맞았다.

 

공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기자실로 향했다. 일찍 온 편이긴 했지만, 인보사 관련 이슈가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만큼 이미 많은 카메라와 펜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회사에서 지시를 받는 기자들, 이슈에 대해 옆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물어보는 기자들, 보고를 올리는 타자소리분주한 동시에 긴장감도 맴돌았다.

아무튼 강석연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의 브리핑이 시작됐고, 10시 42분에 보도자료가 뿌려졌다. 결과는 예상대로 였다. ‘식약처,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케이주 허가 취소’ 사실 기자들의 관심은 품목허가 취소여부보다는 인보사가 취소를 당하게 된 이유와 그동안 미국 실사를 통해서 모든 의혹을 밝히겠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던 코오롱 측의 주장이 왜 먹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대로다. 코오롱생명과학이 ▲허가 당시 허위자료를 제출했고 ▲허가 전 추가로 확인된 주요 사실을 숨기고 제출하지 않았고 ▲인보사 2액이 신장세포(293세포)로 바뀐 경위와 이유에 대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많은 질의응답이 지나갔고, 브리핑은 금세 끝이 났다. 데스크로부터 1면 스트레이트와 한면의 지면배치를 받았다고 지시가 내려왔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스트레이트 기사부터 쓰기 시작했다. 데스크는 기사 지시와 궁금한 점을 묻는 전화를 계속 했고, 후배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여러 팩트 체크를 추가로 하느라 도저히 지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미 1면 스트레이트 기사는 써서 올렸지만, 4시까지 10매에 달하는 메인 박스(해설) 기사를 올려야 하는데, 3시 20분이 됐는데도 기사를 2줄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지면을 막을 수가 없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계속 들었다. 지금 핸드폰으로 28일 내역을 보니 기사를 최종 마감하기 전까지 나에게 여러 군데서 총 18통의 전화가 왔다. 도무지 기사에 집중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친 듯이 기사를 쓰고 있는 사이 기자실에 있던 기자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없었다. 서울로 올라가야 되니 일찍 마감을 하고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자실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다. 약간 내 자신이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식약처에서 다시 오송역으로 향했다. 저녁 5시47분 KTX를 잡아 타고 6시42분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이미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고 다리에도 힘이 없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서울역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회사로 들어오라는 데스크의 전화가 왔다.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다음 판으로 수정해야 할 게 많으니 회사에서 처리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결국 마무리 일을 하고 9시가 넘어 회사에서 집으로 향했다. 너무 힘들어 그냥 택시를 잡아탔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데스크가 내일 발제할 거리를 생각해 보라는 숙제를 줬기 때문에 퇴근 후에 씻지도 않고 노트북을 켜고 방바닥에 엎드렸다. 이미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오늘 식약처 브리핑 보도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11시가 넘은 시간 식약처 관계자에게 문자를 날렸고 취재를 했다. 정말 정말 미안했다. 아이들이 깰 수도 있고 너무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간단히 씻고 누웠다.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렸는데 내일 대체 어떻게 인보사 후속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이날 인보사 브리핑은 이해 당사자들뿐 아니라 모두에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인보사에 사태에 대한 생각은 추후에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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