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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Jun 21. 2019

기자는 잘 모르고 쓰는 직업이 맞다

가끔 기사를 읽다가 밑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저 기레기는 이 사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글을 쓰네"라고 하는 비판을 보게 된다. 블라인드나 블로그, 페이스북 등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 기자는 잘 모른다. 기자가 대단한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혹시 자기 분야나 본인이 다니는 산업, 회사, 사건에 대해 기사가 나간 것을 곱씹어 보라. 기자가 100% 팩트를 알고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알 수도 없다. 경찰이나 검찰이 팩트에 대해서 100% 알고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재판장도 사안에 대해서 100% 알고 판정을 내리는 게 아니다. 주어진 증언과 증거를 토대로 최소한의 준칙인 법을 통해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사실 기자는 판검사들보다 더 무지할 수밖에 없다. 경찰이나 검찰처럼 압수수색을 할 수도 없고, 통신 조회를 할 수도 없다. 기자는 수사관이 아니다. 더욱이 학자도 아니다.

대기업이나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고위 관계자의 말 한 마디만 듣고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이 기자에게 몇 마디를 안했다고 하더라도, 그 멘트가 갖는 상징성과 임팩트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걸 기사로 쓰는 것이다. 보통 그럴 경우에는 그 사람의 멘트가 신문 1면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관계자가 다니는 회사나, 관계부처 담당자가 보기에는 "저 사람은 핵심 담당자가 아닌데.. 저 사람은 기자에게 잘 모르고 한 얘기인데.. 아직 쿠킹이 덜 됐는데.." 하면서 생각할 수 있다..그런데 어쩌겠는가.. 기자는 들으면 쓰는 직업이다. 안 쓰면 일을 안한 것이다.

 
가끔 팩트 파악이 덜 익은 것을 손에 쥐고 있다가 경쟁 매체에게 물을 먹는 경우가 있다. 회사 데스크들은 내가 기사 발제를 하면 킬을 하다가도 유력 매체나 경쟁 매체가 기사를 쓰면 물을 먹었다며 부화뇌동하는 경우가 많다. "니가 끝까지 나를 설득했어야지"하면서..


일단 각설하고 내가 =====>"저 기레기는 이 사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글을 쓰네"라는 댓글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내가 당신들처럼 많이 알면 그 일을 하지 왜 기자를 하겠어?"다. 이건 내 100% 솔직한 심경이다. 내가 회계 전공자가 아닌데 회계사들처럼 사안에 대해 알 수는 없다. 나는 의사가 아니고, 변호사가 아니다.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문 기자를 하는 것은 특이 케이스다. 일단 월급 밸런스가 안 맞다.

 

그저 전문가의 입을 빌어 '이 사안은 이 정도의 방향성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힌트를 제시하는 것 뿐이다. 며칠 전에 비전공자인 유력 바이오업체 홍보 담당자가 내게 "의사와 박사들끼리 약어를 워낙 많이 쓰다보니 회사 회의에 참석하면 30% 정도 알아 듣는 것 같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기자들은 2~3년 마다 부서가 바뀐다. 전문가들이 평생을 공부해서 습득한 암묵지와 지식들을 우리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기자는 그저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다. 그래서 물어보는 것이다. 전문가들에게.


나는 기자들이 어떤 특정 사안이 발생한 것에 대해 기사를 작성했을 때 팩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10% 안팎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빙산의 일각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일각을 캐치하기 위해 취재원들과 술을 먹고, 한마디라도 듣고 쓰기 위해 만취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서 들은 얘기를 잊지 않기 위해 셀프 카톡으로 메모를 하고.. 다음날에 내가 쓴 카톡메모의 오타가 너무 많아서 무슨 말인지도 모를 때의 그 자괴감을 이겨내면서도.


어차피 나도 기사로 평가를 받는 언론인인 만큼 독자들에게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내 얘기는 그냥 전적으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간간이 그런 자괴감이 든다는 것일뿐. 물론 공부를 많이 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춰 나가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없다.


기자는 '듣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줍잖게 워들은 풍월로 취재원들에게 반말을 찍찍하며, 젠체하는 기자들을 나는 존경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일을 해보지 않고, 말로 떠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계에 있다가 보면 별거 아닌 팩트로 엄청나게 사안을 과장해서 해서 쓰는 기자를 종종 본다. 그런 기자들이 유력 매체에서 잘 나간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그런 사람들은 응당 비판을 받아야 한다.


나는 특정 사회 현상에 대해 A의 측면도 있고, 반대로 B로 생각해볼 부분도 있다는 것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가, 머리는 텅텅 빈 상태지만 기자라는 명함만으로 독자와 취재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이 직업을 갖고 있는 한 계속해서 곱씹으며 살아야 할 명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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