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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Jul 04. 2019

로봇이 쓰는 기사, 과연 가능할까


지난주 인천에 한 파트너링 모임에 갔다. 어색하게 명함을 교환하며 기자라는 걸 알리자 한 사람은 대뜸 내게 뚱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은 요새 한 부서에서 얼마나 일해요? 기자들은 너무 빨리 부서가 바뀌는 것 아니에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되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초면에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론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다. 내가 언론계 전체를 대표하는 건 아니잖아요.ㅜㅜ

그의 질문에 나는 "일반적으로 전문지보다는 종합지가 더 페이가 쎄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브런치에 글을 썼지만 전문가 반열에 드는 자격증(ex.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을 갖추려면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뜻이고, 그만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기자를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일하는 만큼 월급을 받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저 특정 현상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하며 방향을 전달하는 전달자일뿐이다. 기자는 정형화된 글쓰기에 특화된 사람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번 일은 기자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25&aid=0002919024&sid1=110&mode=LSD&mid=shm

기자 한명이 맡은 출입처가 너무 넓고, 속보와 취재에 치여 질 낮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언론계를 한탄하는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의 칼럼이다. 그렇다. 우리가 맡아야 할 출입처는 너무 방대하다.


회사는 속보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 된다며 인터넷 속보 기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문 회사를 다니는 기자가 지면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면의 질과 속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라는 주문이다. 7월 3일 회사의 '기사 송고 시스템'에 들어가 내가 하루 동안 쓴 속보(인터넷 기사)의 개수를 세어봤다. 총 7개였다. 하루 평균 쓰는 인터넷 기사 숫자가 7~8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식품의약품 안전처를 출입한다. 보통 정부부처는 자료를 오전에 낸다. 지면에 안 들어가더라도 인터넷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3~4개는 금세 써내야 한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사진을 붙이고 얼른 기사를 다듬어서 '웹전송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외에도 출입하는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업체, 제약협회, 바이오협회 등의 자료를 처리하게 되면 처리해야 할 인터넷 기사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점심을 먹기 전인데 이미 약간 진이 빠진다.

3일 11시경 편집 회의가 끝나자 부서 데스크는 1개 업체의 자료기사(식약처의 인보사 허가취소)와 이전에 발제해둔 200자 원고지 10매짜리 대박스를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 신문사는 오전에 2번, 오후에 2번 그리고 마감 후 1번 이렇게 총 5번의 데스크 회의를 한다.) 점심 시간을 넘겨가며 미친 듯이 7매짜리 기사를 쓰고, 후배와 함께 30분 만에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2시30분이었다. 최소 4시까지는 10매짜리 대박스 기사를 써서 올려야 한다.

신문에선 그래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표부터 만들어 올려야 했지만, 머리는 하얘졌다. 언제나 대박스를 쓸 때면 드는 '내가 이 기사를 마감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써내려가서 결국 기사를 마감했다. 저녁 6시까지 2시간 정도가 남았지만, 이미 하루에 쓸 모든 스테미너가 다 빠져나가버렸다.

당장 내일 아침까지 발제를 해야 할 거리를 찾아야 하고 취재도 해야 하지만 진이 빠져서 노트북을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신문 초판 강판이 5시에 끝났기 때문에, 이후 약속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기자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동중 6시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문자가 왔다. 출입처 가운데 하나인 한미약품이 파트너사인 얀센과 라이선스계약을 맺었던 1조원 규모의 비만/당뇨치료제에 대한 권리를 반환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 '신약수출 실패'였다. 머리가 하얘졌다. 어차피 크게 가면 1면 스트레이트에 대박스(해설기사)를 써야 했기 때문에 급히 약속을 취소하고 6시15분경 인근 커피숍에 앉았다.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작업 중 하나인 핸드폰 테더링을 켜 노트북에 연결했다.

 

회사에서 내근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회사 지시를 따르겠다고 얘기했다. 그 사이 후배와 내가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취소 속보를 각각 1개씩 송고했다. 정확히 6시 30분경 데스크에게 전화가 왔다. "기사쓰고 있냐. 7~8매 써서 보내"라고. 이 말은 7시까지 마감을 하라는 뜻이었다. 30분 만에 8매의 기사를 쓰라니.. 1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기사를 써야하는 오더인 것 같다.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기사를 써내려갔고, 겨우 7시에 맞출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4일자 우리 부서 지면에는 1개의 기사를 제외하고 모두 내 이름이 실리게 됐다. 기사보낸 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며 '이러고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우울해졌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지 않기 만을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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