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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Aug 26. 2018

음모론에 지배당한 대한민국

당신도 믿고 있나요

"또 누구의 기사를 덮으려고 하는거야" "뻔하지 S사지 뭐" "검찰일거야. 청와대인가"

거물급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마약등 각종 사건사고를 알리는 기사가 나오면 꼭 따라 붙는 댓글이다. 정부와 대기업에 불리한 기사가 나올 예정인데 이를 연예인 기사를 통해 물타기를 했다는 음모론이다.

대한민국은 음모론에 지배당한 사회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나는 너희보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 날카로워'라고 어깨를 으쓱한다.

각종 보도에서 음모론이 제기된 사례는 일일이 열거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2011년 4월 BBK 특별수사팀이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자,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 소송을 통해 이를 막으려고 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지난 2005년에는 박진영 JYT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비-이효리의 '키스더라디오' 괴담을 덮기 위해 인디밴드인

카우치의 하의를 벗게 했다는 음모론이 난무했다. 당시 이를 실제로 믿는 사람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1년 대형 연예인 기사 중 하나였던 톱 MC 강호동씨의 탈세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1박2일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강씨의 종편행을 막기 위해서 KBS가 그런 자료를 터뜨렸다는 음모론을 주장했다. 이후 연달아 터진 평창 땅 기사도 비슷한 류의 음모론이 퍼졌다. 강씨가 정권이나 방송가에서 미운털이 박혀서 강씨가 잠정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도록 연속 보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현재 강씨가  아는형님과 한끼줍쇼 등 종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음모론이다.

최근에 제기된 음모론도 많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도 있고,  금융감독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발표를 덮기 위해서 연예전문매체인 '디스패치'가 박진영씨의 구원파 보도를 했다는 음모론도 나온 바 있다.

음모론이 눈덩이만큼 커지자 디스패치는 "음모론은 이제 지겹다"며 "박진영은 구원파고, 삼성은 분식회계다"라는 제목의 취재 파일을 내보냈다. 취재 일정에 따라 보도했을 뿐, 삼성 분식회계 발표시기와 기사 보도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현대기아차에서 국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BMW 화재 보도를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까지 일부 차주들 사이에서 음모론으로 제기되고 있다. 불이 난 걸 보도하지 말라고?


특종이 생명인데?

"잡히면 쓴다" 언론의 모토다. 시일을 재거나 하지 않는다. 왜냐, 경쟁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시청자)들은 언론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각 언론사를 바라볼지 모르지만, 각 언론사는 모두 경쟁매체다.

한 언론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언론사는 대형 특종(연예인 열애설, 마약사건 사고 등)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돈이 많거나 핵심권력이 이를 보도하지 말라며 자신들이 원하는 보도 시점에 기사를 내달라고 부탁한다. 이 가정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언론사가 1곳이면 가능하겠지만 언론사는 수백곳에 달한다. 내가 몇 개의 언론사 이름을 댈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부 음모론에선 정부나 대기업이 전체 언론사를 컨트롤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대기업에서 마치 단톡방을 열어 언론사 전체를 컨트롤한다는 가정이 성립해야 한다. 모두 경쟁매체인데? 논리가 성립이 안 된다.

무엇보다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각종 사건사고가 나온다고 이슈가 덮히지 않는다. 이슈는 계속 진행된다. 이 세상 모든 이슈를 덮을 만한 핵폭탄급 팩트는 전쟁외엔 없다. 디스패치의 보도가 나온 후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회계감사 결과는 발표됐다.


음모론의 문제, 본질을 호도하는 것

음모론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빛을 발한다.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기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믿고 맞지 않는 것은 쳐내는 확증편향의 오류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우리 국민들은 권위주의 시절을 통해 각종 용공조작 사건들을 목도한 학습효과가 있다. 정부나 기업이 발표하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 거대한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과거 권력자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일부 정치권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각종 물타기를 하기도 한다. 나를 반대하는 거대 세력이 언론이나 권력과 짜고 나를 음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터넷매체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뭔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도 지울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음모론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 일반 대중들로부터 음모론의 조종자라고 의심을 받는 권력자가 본인이 기획의 희생자라고 음모론의 떡밥을 뿌린 것이다.


열애 기사는 열애 기사고 각종 정부, 대기업의 헛발질은 별도의 사안이다. 두 개는 별도의 이슈고 별도로 굴러가는 사건이란 얘기다. 모든 것은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1,0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거대 기획론을 목도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의 침몰설을 들으면 마음이 찢어질 것이다. 핵심을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핵심은 소통

원론적이고 재미 없는 얘기지만 결국은 '소통' 밖에 없다.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기업들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여기에 뭔가 꼼수가 있을거야,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최대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 만이 대한민국을 음모론 사회에서 벗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도 국민의 신뢰를 얻고 '기레기 양산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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