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블 팬이다. 어쩌다보니 팬이 돼 버렸다. 물론 모든 시리즈를 본 것은 아니지만, 아이언맨 1~3, 토르 1~3, 어벤져스 1~2, 가디언즈오브 갤럭시, 앤트맨 1~2,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닥터스트레인지 등을 봤다. 스파이더맨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 보지 않았다. 슈퍼맨과 배트맨도 좋아한다. 히어로 무비는 언제나 대박을 친다. 올 상반기 빅히트를 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는 우리나라에서만 1,200만명을 동원했다.
내가 히어로 무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화려한 CG에 빠져서 잠시나마 빡빡한 현실 세계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어로 무비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대사가 뭔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세상을 구하자(Save the world)”이다.
이들 히어로 무비를 여러 번 보며 스릴과 희열을 느끼면서도 한가지 씁쓸했던 점은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선 한명 또는 여러 명의 히어로가 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 종족과 일전을 치룬다. 그들은 시리즈물에서 단독 주인공일 경우 혼자 일당백을 발휘하며 거악을 물리친다. 끝도 없이 나오는 외계 종족을 거느린 타노스와 같은 적을 상대하는 히어로들은 합심해 이들을 쫓아낸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외부 세계의 거악을 척결하는 콘셉트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히어로 무비와는 달리 각 나라는 외부의 적보다 더 큰 내부의 적과 상대하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며 전 세계를 향해 총을 겨누며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은 2분기 4.1%이라는 경제성장률이 무색할 정도로 깊이 병들어 있는 나라다. 하루 평균 30명이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다. 전날에도 플로리다에서 온라인 게임대회에서 패배했다며 24살 청년이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해 여러 명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했다. 트럼프 취임 후 백인 우월주의 등 극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남미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멕시코 어느 나라 하나 온전한 곳이 없다. 권력층은 부정부패에 취해 있고, 갱들은 치안을 어지럽히며 무참한 살육과 마약거래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은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웃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이슬람국가(IS)의 본거지가 파괴됐지만 이들 무리가 각 나라에 암약하면서 기존 세력과 연계해 잔혹한 자살폭탄 테러를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 유럽도 경제 성장률 약화에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밀려드는 난민까지 더해지면서 극우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 폭탄테러,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 테러 등 언제든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화약고로 변한 지 오래다.
지구도 고온화에 몸살을 앓아 2030년까지 북극 빙하가 모두 녹아 버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바다는 오염되고 있지만 플라스틱 사용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저출산-고령화에다 새로운 먹거리 산업 부재, 미친 듯이 치솟는 집값, 교육문제, 묻지마 폭력(살인), 최근 급부상 하는 남녀갈등 등 여러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돈이 많고 첨단 무기로 무장했거나 혹은 초능력이 있는 히어로라도 이런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닥터스트레인지가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문을 걸지 않는 한. 과연 닥터스레인지가 계산한 확률속에 이 세상을 구할 방안은 있는 것일까.
우리는 히어로를 갈망한다. 누군가가 튀어나와 복잡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히로인)는 바로 당신이다. 일상에서 하는 당신의 선택 하나 하나가 “Save the worl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