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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파르크 Oct 19. 2017

왕안석, 중국 최고의 개혁가(하)

[신법의 빛과 그림자]

 신종은 왕안석에게 전권을 주고, 개혁을 맡깁니다. 신종의 믿음에 힘입어 왕안석은 개혁의 칼날을 본격적으로 꺼내듭니다. 이렇게 시작된 왕안석의 개혁을 ‘신법’이라고 부릅니다. 왕안석은 먼저 신법을 추진할 정치기구인 ‘제치삼사조례사’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줄 젊은 관료들을 뽑아옵니다. 


 왕안석은 우선 농촌을 안정화시킵니다. 전 국토에 수리시설을 건설합니다. 저수지와 보를 충분히 만들어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사용할 수 있게 하죠. 그리고 황무지를 대규모로 개간하여 농토를 확보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토지를 정확히 조사해, 지주들이 숨기고 있던 토지를 찾아냅니다. 그리곤 세금을 공명정대하게 매깁니다. 영세한 농민을 위해선 영농자금을 빌려주는 청묘법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농민과 농촌이 안정화되고, 지주들의 은닉 재산을 색출하자 세금으로 국고가 가득하게 됩니다.     


 상업에도 손을 뻗칩니다. 당시에 대상인들의 중간 농간이 매우 심했습니다. 이들은 대규모 자본을 이용해 물품을 사재기해서 폭리를 취했죠. 왕안석은 직접 나서기로 합니다. 상품유통을 국가가 직접 나서서 관리합니다. 대상인의 입맛대로 널뛰던 물가가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중소상인을 위한 대출제도도 만듭니다. 많은 중소상인들이 대상인의 등쌀에 경제적으로 궁핍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자금을 빌려주는 시역법을 실시하죠.      


 교육개혁도 합니다. 과거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폐단이 너무 심해졌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모든 송나라 젊은이들이 관료가 되기 위해 평생을 과거시험만 준비했습니다. 허나, 과거의 관문은 너무도 좁았죠. 관료 자리를 늘리고 늘려 관료가 2만 4천 명이나 되었지만, 더 늘리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왕안석은 과거를 학교교육으로 대체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태학삼사법을 만들어, 일련의 학교교육과정을 마치면 관료가 되는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군사개혁도 단행합니다. 돈만 많이 들고,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허약한 군대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군기감이라는 무기 연구소를 만듭니다. 기술자를 모아 무기를 새로 개발하고, 개량했습니다. 지금의 예비군 같은 군사조직도 만듭니다. 각 지방의 가정들을 조직화하고, 장정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 군사조직은 평소엔 치안을 담당하고, 전쟁이 나면 전투에 투입되었죠.     



 사회 모든 곳에 왕안석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흑자로 전환해 텅 비어 있던 국고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농민들은 농사 짓기 좋아졌다며 방금 웃었습니다. 중소상인들도 대상인에게 치이다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재산 은닉하던 지주, 사재기로 재미 보던 대상인들은 개혁의 철퇴를 맞고 숨을 죽입니다. 문제덩어리던 교육, 군사 문제도 개선됩니다. 병들어가던 송나라가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왕안석의 개혁이 밝은 빛으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개혁안들이 처리되면 될수록 송나라 조정은 갈등으로 혼란에 가득 찹니다. 바로 왕안석의 독선적인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조정엔 사마광, 소식, 정이, 정호 등 명망 있는 관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왕안석과 함께 송나라의 미래를 걱정했었죠. 하지만 매번 왕안석은 국가 중대사항을 결정할 때 이들을 무시합니다. 명망 있는 관료들은  왕안석을 비판하며, 매번 그를 걸고넘어집니다.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 없이 자기 뜻대로만 일 처리하는 왕안석이 못마땅했던 것이죠.     

 송나라 정계가 양분됩니다. 왕안석과 그의 개혁을 지지하는 신법당과 사마광이 중심이 된 개혁을 반대하는 구법당이 대립합니다. 왕안석이 집권했을 때는 신법당에 힘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왕안석이 정계에서 물러나자 반대파 구법당이 득세합니다. 이들은 모든 왕안석의 개혁을 무위로 돌립니다. 그럼 신법당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또 복수의 칼날을 갈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습니다. 자신들이 집권만 하면, 구법당 모두를 쓸어버리겠다구요.     




 황제가 바뀌거나, 황제의 생각이 변할 때마다 구법당과 신법당은 번갈아 집권합니다. 그럴 때마다 반대파를 철저히 탄압합니다. 개혁이라는 목적은 실종된 채, 반대를 위한 반대, 보복과 복수가 이어집니다. 비생산적인 당쟁이 이어집니다. 이는 조선 붕당정치가 변질되어 간 것과 맥이 비슷합니다. 국가와 백성을 위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이 속한 당의 이익만을 위해 다투었죠. 집권세력이 교체될 때마다 국정 방향이 마구 바뀝니다. 나라는 방향을 잃고 표류합니다.


 송나라 당쟁의 폐해는 ‘원우당적비’를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원우당적비는 구법당에게 탄압받다 다시 정권을 장악한 신법당이 만든 비석입니다. 신법당에 반대한 구법당 인사들의 이름을 새겨 나라 이곳저곳에 세워둡니다. 그리고 이 비석에 써놓은 사람은 물론 그들의 일족들에게까지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편협한 정치 복수 행태의 전형이죠.     



 왕안석은 무너져가는 송나라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분명히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정책논의와 의견수렴 과정을 생략한 채 독선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당쟁이라는 새로운 병폐를 낳았습니다. 가장 위대한 개혁가로 칭송받을 정도로, 사회 전 분야를 개조한 그의 신법이 당쟁으로 변질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개혁은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뒤집기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당사자들과, 반대파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며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속도가 느려질 순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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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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