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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y 21. 2021

연애에 임하는 자세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내가 내 파트너에게 천생연분이길 바랐다. 내가 그 사람의 완벽한 반쪽이길 바랐다. 우리가 일평생 찾아 헤맨 소울 메이트가 서로이길 바랐다.


나는 늘 백년해로를 염두에 두고 연애했다. 그 사람과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최소한의 확신도 없이 누구와의 연애를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생을 통째로 끌어안을 마음의 준비를 한 뒤에야 그 사람에게 고백하거나 그 사람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그랬다. 


나는 연애마저도 심각하게 했다.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나는 언제나 내 연애 상대의 인생 전체를 상대하려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간을 알고 싶어 했고 그 사람이 살아갈 모든 시간을 적극적으로 궁금해했다. 나는 그 사람의 친구나 가족을 보고 싶어 했고 그 사람의 인생 목적에 대해 상세히 듣고 싶어 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싶었으니까. 나는 연애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자발적으로 안전하게 해부하며 상대와 자기에 대해 더 면밀히 알아 가는 과정. 


누군가는 그런 과정 끝에 있는 것이 권태기뿐이라고 했다. 서로 알 거 다 알면 그때부터 죽도록 지루하지 않겠냐고. 연인이 가족처럼 되는 거 자긴 싫다고. 


나는 연애의 온도가 생활의 온도만큼 떨어지는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그거였다. 연애가 평범한 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것. 연애가 생활로부터의 일탈이 되는 게 아니라. 연애가 생활로부터의 여행이 되는 게 아니라.  


나는 내 연애로부터 포근하면서도 내구성 있는 유대감을 원했다. 거슬리는 곳이 없는 친근감을 원했다. 번개처럼 잠깐 일어났다 사라질 자극이 아니라. 


흥분과 열렬한 스킨십이 포함된 연애 자체를 꺼린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뿐인 연애를 꺼렸다. 그게 전부인 연애.


(중략)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는 

내 갈망은 어느 순간부터 

내 연애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짐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그 착각이 내 파트너를

지쳐 떠나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연애에 관한 한 갓난쟁이처럼 어리석었다. 연애를 오래도록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이 사람이야!’ 하는 강력한 확신이 아니라 사소하고 끈질긴 노력과 배려였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내 연애를 영원히 이어 줄 어떤 원인을 찾기에만 바빴다. 


천생연분, 반쪽, 소울 메이트…. 


나는 이런 단어들에 미혹되어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을 찾기만 하면 그 사람과 내 연애가 아무 문제 없이 유지될 거라고 믿었다. 


애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번거롭고 고단한 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나는 내 노력이 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힘이 내 연애를 지속시켜 주기만을 바랐다. 


나는 진중한 연애를 추구한 게 아니라 간편한 연애를 추구하고 있었다. 가볍디가볍긴 내 쪽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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