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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04. 2020

동전 노래방에서 나에게 노래를 불러 준 사람


어느 날 그 선배가 나를 불렀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데, 그리로 오라면서. 그 선배가 학교 아닌 어딘가로 나를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선배는 우리 학교 근처 오락실 동전 노래방에 있었다.


나는 그 선배가 자기 친구들하고 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친구들과 함께 그 오락실에 갔다.


그런데 그 선배는 동전 노래방 부스 안에 혼자 있었다. 다리를 꼰 채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얼른 다른 부스에 보내고, 그 선배가 있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마음이 이상했다.


나를 발견한 그 선배는 내 눈길을 피하며 나에게 물었다. 듣고 싶은 노래 있냐고.


나는 그 선배 맞은편 자리에 앉아, 그 선배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서는 열감이 느껴졌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그 선배는 자신을 뚫어지게 보지 말라며 조금 인상 썼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떨구며 침묵했다.


그 선배가 노래방 기계에 지폐를 넣는 소리가 들렸다. 지폐는 기계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내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선배는 나에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고 노래 네 곡을 불렀다. 말소리와 다른 목소리로. 말소리만큼 듣기 좋은 노랫소리였다.


노래를 다 부른 그 선배는 별안간 나를 보며 나가라고 했다. 부스에서 나가라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부스 문을 열었다.


그 선배는 그 부스 안에 한참 앉아 있었다.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핸드폰을 보지도 않고….


그 선배 친구들이 그 선배가 있는 부스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내 친구들과 그 오락실 밖으로 나왔다. 오락실을 나오는 길에, 내 친구가 그 선배에게 인사했다. 그 선배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친구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나를 끝까지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선배가 갑자기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때가 4월 중순이었다.


그해 5월, 그 선배가 나에게 증명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어떠냐고 나에게 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 그 증명사진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증명사진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 선배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선배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내 속이 탔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동전 노래방 부스에서 그 선배가 나에게 노래해 준 뒤로, 나는 이상한 증상에 시달렸다. 그 선배가 나에게 문자할 때마다 내 심장이 철렁하였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철렁…. 


그리고 나는 그 선배의 전화를 예전처럼 바로 받지 못하였다. 가슴이 뛰어서. 


그 선배가 한없이 어려워졌다. 그런 동시에, 나는 그 선배가 자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볼일이 없는데도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가거나, 중앙 현관을 서성거렸다. 혹시라도 그 선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글은 소설집 《관계의 역사》에 수록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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