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 설 때 한 번씩, 나는 내 마음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나와 관련된 무언가를 당신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당신에게 군더더기 없는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부딪친다. 그것들은 더는 그럴 수 없이 거세게 부딪친다. 보이지 않는 세계들까지 모조리 파괴할 것 같은 속력으로 날아와서는, 쾅, 하고….
그런데 그 어느 쪽도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다. 이렇다 할 결론 이 나질 않는 것이다. 내 안에서 굉음의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콰앙, 콰앙, 콰아앙….
그것들의 엄청난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괜히 창밖을 바라보거나,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멀쩡한 내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당신 옷자락을 조심히 붙든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아주 엉뚱한 말을 내뱉거나, 아무런 말없이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과시하는 것인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
내가 여기서 말하는 과시誇示는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사실보다 대단한 형태로 내보이는 것’이다. 나와 관련된 무언가를 당신에게 과시해 보이고 싶은 내 마음은, 나와 관련된 무언가를 사실보다 대단한 형태로 내보이고자 하는 마음이다.
지금의 나보다 좀 더 괜찮은 형태의 나(하지만 진짜 나는 아닌 나)를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마음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당신의 환심이나 호감을 사고 싶은 마음이겠다. 내가 그렇게 하면, 당신이 내 곁에 좀 더 오래 머무를까, 하여.
그런데 거짓말은 매번 보완을 필요로 한다. 진짜가 아닌 것을 유지하려면, 또 다른 가짜들을 거기에 자꾸만 갖다 붙여야 하니…. 거짓말에 거짓말이 붙고, 그 허구적인 복합체에 또 다른 거짓말이 붙는다. 그리하여 결국 당신이 만나는 것은,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이상향이 될 것이다.
당신 앞에서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그 이상향으로 존재하려면, 나는 수없는 거짓말들을 떠안고 있어야 한다. 거짓말 한두 개는 근사한 귀금속 같지만, 헤아릴 수 없는 거짓말들은 그냥 거대한 돌덩어리일 뿐이다. 그걸 계속 이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못할 짓이겠다.
조금 눈부셔 보이자고 시작한 그 일은, 끝내 나를 눈멀게 만들 것이다. 내 사지를 허물고 말 것이다. 나는 내 거짓말들의 무게 때문에 결국 무너질 것이다. 내 정신 나간 거짓 생활이 탄로 나면, 그 관계도 부서져 내릴 것이다. 불신으로 인하여.
그쯤 되면,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볼 것이다(늘 그랬다). 정작 저 사람이 나에게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르지 않는가. 저 사람이 나에게서 보고자 한 게 무엇이었는지…. 왜 나 혼자 이 난리를 피웠는가.
‘정말 조금만 속이자. 아무도 모르게. 나 자신도 모르게.’라는 마음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약간의 거짓말이 오히려 관계를 윤택하게 할 거라는 속삭임은 얼마나 다정한가. 내가 곧 그런 사람이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그러니 지금 이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라는 생각)은 목 넘김이 좋은 술 같았다.
환심이 군것질거리라면, 진심은 쌀밥 같은 거였다. 관계의 주식과 부식의 차이를 나는 몰랐다. 환심만 좇다가는 관계가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는 점에 나는 무지하였다.
악의 없는 무지는 이해와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지만 더는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때가 있고.
이 글은 산문집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들》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