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Mar 07. 2023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기만 해요

어떤 마음 상담소 #3

Q.


저를 어떻게 바꿔야 돼요? 아예 아무도 안 만나야 하나.


A.


지금 저희는 두 가지 변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어요. 첫째, 내가 소진되지 않을 만큼만 내 호의를 써 보기로 한다. 둘째, 내 호의를 호의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이 두 가지 전략을 실천해 보기 앞서 저희가 굉장히 신중하게 그리고 최대한 정밀하게 파악해 두어야 할 부분이 있어요. 


Q.


그게 뭐예요?


A.


누군가에게 호의를 제공하는 규영님의 속마음 그리고 규영님 호의를 받으시는 분들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질문 하나 드려 볼게요. 규영님은 누가 뭘 필요로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한테 필요해 보이는 걸 그 사람에게 제공하신 적 있나요?


Q.


음. 네.


A.


그럴 때 규영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또 어떤 감정을 느끼셨고.


Q.


내가 이렇게 해 주면 그 사람이 좋아하겠지? 그 사람이 감동하겠지?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기대감을 가졌고요. 근데 그 사람이 좋아하는 티를 안 내거나 하면 제가 실망을 했죠. 얘도 이제 내 성의 표시를 당연하게 생각하나 싶었고요.


A.


우리 잠시 그분하고 규영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뭘 깨달으려고 입장을 바꿔 보는 건 아니고요. 정말 순수하게 그분하고 규영님 입장만 바꿔서 우리 이 상황을 다시 봐요. 


어느 날 규영님한테 누가 다가와서 뭘 건네요. 그리고는 말하죠. 너 이거 필요하지 않았어?

그런 상황에서 규영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실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시고.

해야 하는 대답 생각하지 마시고 진짜 규영님 마음을 말씀해 주세요. 


Q.


전 좋을 거 같은데요. 그 사람이 저한테 필요한 거 준 거잖아요.


A.


그렇죠. 누가 나한테 필요한 걸 주면 너무 고맙죠. 감동도 하고요. 그런데 만약 그 물건이 규영님께 필요하지 않은 거였다면 규영님은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까요.


Q.


고맙긴 한데 뭐 좀 얼떨떨하겠죠. 이 사람 왜 이걸 나한테 줬지 싶을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일단 그 사람한테 고마울 거 같긴 해요. 그 사람이 저 생각해서 그거 마련해 온 거니까. 


음. 근데 그 사람이 계속 그러면 싫을 거 같기도 하네요. 그 사람 지 혼자 신나서 저한테 막 이것저것 가져다주는데 그것들 전부 저한테는 필요 없는 거라면. 전부가 그런 거라 생각하면 끔찍하네요.


이렇게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싫을 수도 있겠어요. 필요도 없는 걸 계속 받는 입장에서는. 자기한테 필요 없는 건 다른 사람한테 주면 되지 싶으면서도 그게 다 일인데 싶기도 하고. 


저는 제 좋은 의도에만 취해 갖고 그 사람들 마음이나 생각은 깊게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뭐 안 한 거죠, 사실은. ‘너는 나한테 무조건 고마워해야 돼.’라고 생각했지. 


부끄럽네요. 제 행동들이. 선생님 앞에서는 부끄러워해 놓고 일상 돌아가서는 예전처럼 굴까 봐 무섭기도 하고요.


A.


습관 하나 만드는 데 들인 시간만큼의 시간이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습관 해체 작업에 들어가니까요. 습관 바꾸는 일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단번에 안 되는 게 정상이고요. 예전 마음 올라오는 걸로 죄책감 가지시지 않아도 돼요.


오늘 저랑 이런 이야기 나누었다고 그동안 규영님이 제공하신 호의 전부가 나빴다고 생각하시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타인에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베푸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고 의도 면에서는 너무 숭고한 일이에요. 저는 규영님이 가지고 계신 그 따뜻하고 다정한 의도를 지지하고요. 거기에 감동 받는 사람이고요. 그걸 좀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는 방안을 규영님하고 같이 고심할 거고요.




· 이 글은 상담이 필요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상담실에 방문하지 못하시는 분, 고민거리는 있는데 그걸 상담실까지 가져가도 되는지 의문하시는 분,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문득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이것도 괜찮은 삶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 외부의 압박 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싶으신 분, 어떤 문제를 가진 누군가의 마음을 가까이서 헤아려 보고 싶으신 분을 위한 책 '어떤 상담소(가제)'의 초고 일부분입니다.


· 어떤 마음 상담소에서 현재 비대면 심리 상담, 비대면 미술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은 어떤 마음 상담소 스마트 스토어(https://smartstore.naver.com/cacucomagazine)에 방문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