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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pr 11. 2023

부모님 기준이 제 기준이 된 것 같아요

어떤 마음 상담소 "부모 목소리의 내면화"

Q.


근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생 그런 말 들어서 그런가 봐요. 저희 부모님은 저한테 화내실 때마다 그 분노에 대한 책임이 저한테 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어떻게 어른이 어린 애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선생님. 


A.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어린 명주 씨 마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Q.


난장판이 됐죠. 마음이고 뭐고 다. 


A.


아이들 머릿속에는 필터가 없어요, 명주 씨. 어른들이 자기한테 해 주는 말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아이들에게는 없어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해 주는 말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아요. 그 과정을 내면화라고 하거든요.


내면화된 말들은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에요. 내 양육자 또는 나에게 중요한 타인이 나한테 해 준 이야기들은 내 안에 들어와 내 이야기가 돼 버려요. 예를 들어 부모님한테 ‘너는 진짜 너밖에 모르는구나.’라는 말을 밥먹듯 듣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뭘 선택하려 할 때마다 자기한테 물어요. 너 지금 이기적인 선택 내리고 있는 거 아니냐고. 어느 순간부터 자기 눈에도 자기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보여서요.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한테 모든 걸 양보하면서 사는데도 자기를 타산적인 사람 취급해요. 


그 사람 무의식은 항상 자기 부모님의 눈을 달고 있어요. 자기 부모님이 자기를 보았듯 매일 자기를 보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든 그 사람 무의식이 그 사람에게 말해요.


“너는 진짜 너밖에 모르는구나.”

“이기적인 것.”


Q.


제 무의식에도 저희 부모님 눈이 달려 있는 거 같네요.


A.


모든 사람 무의식이 가끔 타인의 눈을 달고 있어요. 거기까지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내가 나를 판단할 때 빌리는 시선의 대부분이 타인의 시선인 건 문제가 되겠죠. 일이 그렇게 되면 내가 주체적으로 살 수 없게 되니까. 그러면 내 욕구, 내 필요를 무시하면서 살게 되거든요.


내면화된 타인의 목소리는 타인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아요. 그냥 다 내 목소리 같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라요. 지금 자기가 누구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건지. 그냥 막연히 그게 자기 목표처럼 느껴지거든요. 그 목소리가 내 목소리처럼 들리니까. 근데 잘 들어 보면 그게 내 목소리가 아닌 거죠. 


그게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요. 그다음에는 자기 진로를 수정하고요. 


아무리 결심이 견고해도 그 수정 과정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일을 끝까지 해내요. 그게 자기 활로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 살던 대로 계속 살면 자기가 걷잡을 수 없이 불행해지겠다는 걸 알아서요. 자기 없이 사는 것만큼 불행하고 고독한 건 없다는 걸 알아서.


명주 씨는 이제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Q.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제가 저희 부모님을 용서해야 하나요? 용서가 안 될 거 같은데.


A.


우리가 우리 부모님을 온전히 용서해야 그분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자립하고 용서는 별개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립 따로 용서 따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무엇이 무엇의 필요 조건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려면 먼저 최소한의 안녕감과 물리적인 여유를 가져야 해요. 내가 내 부모님하고 계속 부대끼고 있으면 그런 조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상태에서는 용서다운 용서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용서하는 시늉만 하게 되죠. 




· 이 글은 상담이 필요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상담실에 방문하지 못하시는 분, 고민거리는 있는데 그걸 상담실까지 가져가도 되는지 의문하시는 분,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문득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이것도 괜찮은 삶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 외부의 압박 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싶으신 분, 어떤 문제를 가진 누군가의 마음을 가까이서 헤아려 보고 싶으신 분을 위한 책 '어떤 상담소(가제)'의 초고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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