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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wan Feb 26. 2016

수업 풍경

편하지만 편하지 않은 수업

서른 중반에 뉴욕으로 공부하러와서 영어도 영어지만, 가장 큰 변화를 피부로 느낀 것은 바로 수업에 관한 것이다.  수업시간에 다루는 내용의 질도 질이지만, 수업을 이끌어가는 방식과, 준비하는 과정, 커리큘럼 등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분명 낯설기도 하였다.  내가 겪은 내용들은, 내가 다니는 학교(Tisch School of the Arts, NYU)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아주 일반론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다.  다만 Art, Design & Technology 분야로 미국 유학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방식으로 학교 수업이 돌아가는지 슬쩍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1. Hi Dan (부제 : 멈출 수 없는 목례)

입학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 였었나.  정수기 근처에서 물을 내려서 마시던 중에, 우리 학과 부학장(Associate Dean)이 내 곁을 지나가면서 내게 눈으로 찡긋 인사를 하길래,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목례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학장님'이라고 인사를 했다.  근데 이게 한국말로는 전혀 이상하지 않는데, 영어로 하니 아주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안녕하세요 학장님'을 직역해서 내뱉은 말이 'Good morning, Chair Sullivan' (학과장님의 이름이 Dan O'Sullivan 이다) 나름 첫 인사라 정중하게 하였는데, 부학장님은 가던길을 멈추고 웃으면서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내게 Chair 라든가, Dean이라고 안불러.  네가 한국에서 와서 어색한건 알겠는데, 앞으로는 그냥 Dan 이라고 불러."


그럴만도 한 것이, 십수년간 한국에서 학교다닐때는 '김교수님', ' 이교수님'이라고 불렀고, 회사에서도 '정대리님', '윤책임님'처럼 직책을 부르는데 익숙하다보니 이런 참사가 생긴 것.  그러고 보니 동양인- 한국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목례를 아무도 안하더라. (중국 학생들은 무척 자연스럽던데) 그래서 나도 여러 교수님들께 목례를 줄이고 성(Last name)보다는 이름(First name)을 부르려고 노력했는데, 처음에는 심지어 Hi Dan 하는게 죄를 짓는 느낌마저 들어서 무척 힘들더라.  사소한 거지만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다는거.




#2. 교수가 누구지?

예전에 대학교 다닐때에는 교수님의 긴 강의가 이어지고, 강의를 놓칠새라 열심히 노트에 받아적고, 중요한 것에는 밑줄도 긋고 별표도 두서너개씩 치고 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의 '질문 있니?' 라는 물음이 나와야 간간히 학생들이 질문하곤 했다. 그 와중에도 많은 학생들은 받아적기 바빴고, 동시에 질문 할 것을 생각해내기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따금 질문 하던 학생들이 있긴 했는데 늘 하던 애들만 가끔하고, 보통은 수업이 혹시나 늦게 끝날까봐 질문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도 분명 있었다.  수업 말미에 질문이라도 하면 "아 씨... 쟤 뭐야"라는 탄식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고.


여기서는 일단 획일적으로 '진도를 빼기 위한' note taking이 없다.  한학기 동안 다뤄야 할 주제들이 Syllubus에 빼곡히 적혀있지만, 교수는 각 수업의 중요한 부분들의 원리만 가르쳐주고 필요한 수업의 자료들을 학생들과 공유한다.  수업시간은 주로 학생들이 준비한 Weekly Assignment나, 리서치 내용들을 발표하고 발견한 점이나 의문점을 이야기하면, 학생들간의 다양한 생각들이 긴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학생이 질문을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아는 다른 학생이 답을하거나 질문을 덧붙인다.  교수는 학생들이 생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사고의 틀을 넓힐 수 있도록 여러가지 inspirational material 들을 학생들과 공유한다.  수업중 교실을 멀리서 보면, 누가 교수고 누가 학생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이다.


교수의 강의(Lecture) 보다는 학생들간의 토론(Discussion & Sharing), 그리고 질문(Question)이 중요한 수업의 요소다. 어떤 질문도 무시되지 않고, 어떤 생각도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That's good answer"라고 학생을 칭찬하는 것은 보기 어렵지만, "That's good question"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수업시간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명쾌한 답을 찾는 방법 보다는 문제를 발견하는 시각을 키워주는 것이, 이 곳 Art, Design & Technology 관련 분야의 Educational Purpose인 것 같다.




#3.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지만 다 함께

수업이 마칠때 쯤에는 한국의 대학교와 비슷하게 그 주에 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는데, 처음에 과제를 접하면 그 범위가 모호하기 그지 없다.  가령- 


"오늘 배우고 우리끼리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너희들이 하고 싶은거 아무거나 해와 봐"

 

이런 식.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미국 애들이 '하고 싶은거 해와 봐'라고 하면 얘네들 끼리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서 어느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지 공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수업의 과제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 정말 생각의 방향도 제각각이고, 완성도도 모두 다르며, 생각의 깊이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교수는 누가 누구보다 잘했고, 넌 이게 부족하다느니 라는 식으로 학생들의 과제를 평가하면서 줄을 세우지 않는다.  학생들의 과제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각의 과정과 어떤식으로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경청하면서, 각각의 학생들에게 발견한 강점과 그 강점을 더 강화시켜줄 수 있는 Reference 자료나, 리서치 자료등을 알려주고 더 연구해보기를 권한다.  학생들끼리도 서로의 과제들을 보면서 본인이 필요한 부분,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적극적으로 배우고 물어보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어느 누구도 발표날 당일에 '짠!' 하고 등장하지 않는다.  과제는 말그대로 고민의 흔적과 창작의 과정들을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과제를 대충 넘기지 않는다.  본인이 정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학교 내외로 자료를 수집한다던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과의 콜라보(Collaboration)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한다 (Colloaboration 에 대한 부분은 다음 번에 더 상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을 듯).  막판에 밤을 새서 작업을 하는 것은 한국이나 여기나 비슷하지만, 시작과 과정, 그리고 동기부여가 조금 다를 뿐이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어떤 의견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나누며 들어주는 수업문화가 이 곳에서 느낀 가장 큰 강점이자 배울 점이다.




#4. 평가가 아닌 피드백

본인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발표하면, 교수에게 평가(Evaluation)를 받는 것이 보통의 경험이었다.  이건 잘했고, 이건 별로고, 이건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등등.  하지만 이곳에서 프로젝트 발표를 하고나면, 평가를 하지 않고 질문을 먼저 한다. '왜 제품을 이런 모양으로 디자인 했지?', '이건 어떤 의도였지?', ' 아까 말했던 프로세스가 굉장히 흥미롭던데, 어떻게 해서 그런 접근을 했지?' 등등.  평가를 위한 질문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고, 게다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고 판단되면 질문의 양은 좀 더 많아진다.  


교수의 의견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학생이 마쳤을때야 비로소 짤막하게 들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평가가 아닌 피드백(Feedback)이다.  '이런건 굉장히 좋았고, 이런부분은 XXX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구글로 한번 찾아보면, 나중에 관련된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와 같이 학생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견을 준다.  간혹 교수님에 따라 혹독한 크리틱을 받는 때도 있지만(그건 정말 개인 성향), 대개 그런 경우는 정말 과제 중간중간에 공유 안하고 있다가 맨 마지막에 '짠!!' 할 때 대부분 그런 경우가 생긴다.  모든 프로젝트는 본인의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간의 협업, 교수들과의 의견공유 같은 프로세스를 굉장히 중시한다.  남몰래 뭔가 대단한걸 준비해서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라면 일찌감치 그런 생각을 미리 치워두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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