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육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제는 무척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대학교 4학년 가을이었을까. 졸업 작품을 슬슬 마무리할 때 즈음에는 며칠을 연속으로 집중해서 작업을 하느라 밤도 많이 지새웠다. 며칠간의 밤샘 작업 후에 스스로에게 주는 꿀 같은 휴식으로 방에 들어가 오랜만에 TV를 봤었는데, 그게 SBS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영했었던 '세계의 명문 대학'이라는 시리즈였다. 세세한 내용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기억나지 않지만 (Youtube에서 검색하면 지금도 볼 수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장면 하나와, 마음에 강하게 도전을 준 꿈 하나가 있었으니- 지구 반대편 세계의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정말 죽도록 공부하는 장면이 있었고,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꼭 한번 그들과 같이 죽도록 공부하면서 경쟁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TV를 보고 나서 나는 휴식을 하기로 했던 마음을 이내 접고 다시 작업실로 향했었다.
그 날 이후 꽤나 시간이 흘러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8년 넘게 다니고서야 다시 미국으로 대학원을 올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의 그 꿈이 다시 떠올라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지나고 보니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체험했던 학교 교육, 그 교육과 산업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관계들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한국에서 내가 겪었던 교육 시스템, 문화와 비교하며 어떤 것이 다르고 좋았었는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었다. Design & Tech 부분 교육에서 세계적으로 선도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교(대학원)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많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입식 교육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을 처음 체계화시켰을 때 어느 나라의 어느 시스템을 참고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때의 것이 그대로 고착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그 교육방식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주입식 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으며 요즘에는 많은 부분 개선되는 중에 있지만, 내 생각에는 주입식 교육은 그 시대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지나고 짧은 시간 내에 고도화된 경제 성장을 이룬 과거를 생각해 보면, 효과적인 주입식 교육만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서구의 발달된 산업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풀어내는가가 관건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의 초기 성장 동력이었던 'Fast-Follower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그 당시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의 인재상은 '일을 효과적으로 빨리 해결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학교는 주입식 교육으로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학생들의 능력을 키워줘야 했을 것이다.
며칠 전 뉴스에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뉴스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들었던 이야기라 '역시 우리나라 아이들이 똑똑하네'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래전에 보았던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우승했던 수학 영재들이 거의 대부분 의대를 선택한다'는 씁쓸한 뉴스 기사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는 영재들이 왜 결국에는 의대로 몰리는 걸까. 왜 세계적으로 걸출한 수학자나 물리학자, 엔지니어가 배출되는 일은 의사가 되는 일보다 드물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유학 온 한국 학생들 대부분의 학기 초반 학업 성취도가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 몸에 밴 학습태도가 오히려 외국 학생들과 경쟁하는데 나름대로 무기가 되는 것인데, 보통의 경우 언어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을 '성실과 끈기'로 이겨내는 듯하다. 내 경우에도 유학 초반에는 외국 학생들은 10분이면 읽을 Reading Material을 최소 30분은 꼼꼼히 읽어야 할 정도로 시간 투자는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몇 번의 학기가 지나가고 여러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난 뒤에 졸업할 때쯤에는 결국 '일 잘하는 사람' 보다는 '일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굳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방향성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생각과 방향을 다듬어내는 것. 그리고 의견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얻어내는 시너지 효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들은 특정한 프로젝트 몇 개를 잘 끝마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 이는 졸업 후 회사에서도 비슷한데, 주어진 일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핵심적인 일을 만들어내고 잘 조직해서 이끌어내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그런 교육 덕분인지 이 곳 실리콘밸리에서는 유명한 대기업에 다니다가도 퇴사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올바른 정답을 빠르게 구하는 데에만 우리나라 교육이 열중하다 보니, 알파고(AlphaGo -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연산 능력과도 경쟁할 수 있는 영재들을 키워내기에 바빴지, 정작 알파고를 만들어낼 줄 아는 인재를 키워내는 방법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번 '미국 교육에서 배울 점들' 시리즈에서는 유학기간 동안에 개인적으로 보고 배우고 느꼈던 부분들 중에 우리나라 교육 문화와 시스템에 부족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짚어볼 생각이다.
1. 우리의 교육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현재 글)
2.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실패없는 도전
3. 팀으로써 함께 성장하기
s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