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ive in U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hwan Jun 26. 2018

아빠에게도 임신기간이 필요하다

임신은 함께 하는 것, 임신 기간도 함께 하는 것

미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뱃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아내의 말에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겪어보지 못했던 길을 가야하는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막막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막상 ‘나 임신했어!’ 라고 외치긴 했지만 아내의 겉모습은 당장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남편인 나로써는 종종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잊기고 했었고.



임신의 시작을 알려주는 신호!!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로 (그 전에도 그랬었지만) 우리의 생활은 조금 더 가족 중심적인 패턴으로 바뀌어갔다.  일단 아내의 임신 사실을 회사의 매니져에게 이야기를 해두었더니, 필요한 때에 WFH(Work From Home, 재택근무)을 언제든지 하라고 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에 집에서 일하면서 아내를 잘 케어하라는 매니져의 명령(?)이었다.  당시의 매니져가 워크홀릭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저런 이야기를 그가 내게 해주었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들의 양도 조절해주어 업무적인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내가 임신한 것도 아닌데 왜? 주변에 이미 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도 다 이런 회사의 배려속에서 본인 혹은 아내의 임신기간을 보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평일에도 내가 짬짬히 집에서 일하면서 가사의 많은 부분을 참여하며 아내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고, 아내도 임신 기간중에 계속 건강한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일날 사이좋게 주고 받는 WFH 이메일



임신 확인 이후 출산때 까지 매달 정기 검진때에도 WFH 하면서 아내와 함께 병원을 갈 수 있었던 것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병원에 가면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남편들도 임신한 아내와 함께 병원에 방문한 것을 적잖게 볼 수 있다.  뱃속의 아이가 어떤 과정으로 성장하는지 아내와 내가 동일하게 지켜봄으로써 아기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다.  그 과정을 아빠인 내가 보지 못하고 아내 혼자 경험해왔다면 출산 이후에 아기에 대한 부모의 애착 정도가 불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기만 부모에게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새끼, 내 자식'이라는 애착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 임신 기간이 아빠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임신 3개월차에 태아와 닮은 꼴을 찾는 아빠



한국에서 당장 이정도의 시스템적인 뒷받침과 문화적인 이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회사 동료가, 혹은 후배가 임신을 했거나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있다면, 내가 매니징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도 조금씩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면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그것이 시스템이 되고 문화가 되어가지 않을까 한다.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모든 것들이 처음 시작부터 좋았을리는 없었을테니까.




se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