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Rachmaninoff Cello Sonata, Op. 19
https://youtu.be/k3FDELMylPo
“이번에는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를 하고 싶어요”
매년 같이 피아노와 첼로 듀오 콘서트를 올리던 파트너 첼리스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머지를 채울 곡으로 여러 곡을 생각하다가 프랑크를 들고 나온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누가 들어도 피아니스트의 험곡 지대가 보장되어 있는 프로그램. 학과장을 맡았을 당시라 연습할 시간이 나줄것인가 걱정이 되었지만, 곧 두곡을 연주하고 있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수억 개의 음들에 두드려 맞는 한이 있어도 꼭 하룻밤에 같이 올려보고픈 프로그램이었다.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며 역할이 많아지고, 특히 일상에 음악 아닌 할 일들이 끝도 없이 붙으면서부터는 연습하는 만큼 살에서 쓸려나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어릴 때는 아무리 무리를 하고 연주를 많이 해도 몰랐던 느낌이다. 프랑크와 라흐마니노프 두 곡 모두 쉼 없이 굽이치는 선율과 극강으로 두터운 화성에 시간과 체력이 빠듯하기 그지없었다. 연주가 다가올수록 모양새에서 두루 볼품이 떨어지면서도, 연습시간마다 발견하는 아름다움에 나 따위의 볼품 따위가 안중에 들어올 틈도 역시 없었다.
스스로 원해서 몰두할 것이 있다는 것이 그 시간들을 기꺼이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음악 하는 우리는 모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안다.
“원해서”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자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어렵기는 이 쪽이 더 어려울 것이다.
마침내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맞출 수 있는 지점에 서게 되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잘 가고 있다는 뜻이다.
기꺼이 원했던 연주에 아낌없이 쏟았던 체력과 마음을 다시 보며 나 자신에게 오랜만에 물었다.
너는 멈추지 않고 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얼마만큼 잘 가고 있는가?’
가던 걸음을 잠시 쉬더라도 이 또한 잊지 말고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