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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Feb 01. 2024

김밥이란 무엇인가

트레이더 조 냉동고에 빠진 후

나에게 김밥이란 무엇인가


어릴 때는 무슨 상이나 선물 같은 것이었다.

소풍을 갈 때, 아니면 생일에 집에서 만들어주는 김밥은 오늘이 어떤 중요하고 즐거운 날이라는 것을 공식화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우리 집 김밥은 오이를 못 먹는 남동생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이는 접근금지, 무조건 시금치, 그리고 햄이나 소시지는 본 적이 없고 꼭 소고기를 볶아 넣어 만드는 고기 김밥이었다. 손이 많이 갔을 듯하다. 또 밥에 식초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들었었는데, 가끔 그 식초냄새가 좀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달큼한 밥 맛을  참 좋아했었다. 다른 집 김밥이 뭔가 다 싱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식초와 설탕이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걸 굉장히 뒤늦게 깨달았다.  


어릴 때는 특별한 날에나 먹는 음식이었던 김밥이 언젠가부터 바쁠 때 손쉽게 먹는 음식이 되어 있었다. 김밥천국, 김밥나라, 이런 1000원짜리 김밥이 들어온 게 언제쯤이었더라? 흘끗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1995년쯤이었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그렇긴 하다. 그전에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안 팔았었나? 그 기억은 확실히 나진 않는다.


스물아홉 때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한번에 여덟 학교까지 시간강사를 나갔다. 하루에 두 개의 다른 학교를 나가며 온종일 강의를 하고 틈만 나면 연습시간을 찾아야 하니, 도저히 제대로 앉아 밥을 먹을 시간은 나지 않았다. 그때 제일 많이 먹은 것이 단연 김밥이다. 특별한 날 먹는 것이 아닌 할 수 없이 먹는 음식이 된 것이다. 시간강사 휴게실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서 주섬주섬 비슷하게 보이는 김밥들을 먹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김밥을 먹으며, 동해바다에 있는 김은 내가 다 먹었네, 아니네 그건 나였네, 하는 자조 섞인 농담에 젊은 강사들끼리 까르르 넘어가곤 했다. 그때 먹었던 김밥들, 보통은 하얀색 스티로폼 용기에 단정히 넣어주는 것도 아닌, 급하게 은박지에 말려있는 김밥들, 어찌나 무미건조하고 정성 없는 맛이었는지. 진력이 나서 소고기김밥, 야채김밥, 참치김밥 등 여러 종류로 돌려 막아 보아도, 어느 학교 앞 가게를 가보아도 그 무미건조하던 맛은 전국 김밥 집들이 무슨 조약을 맺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4년을 주식이 되다시피 했던 김밥.

전임이 되고 특히 초반에는, 모르는 동네에 뚝 떨어져 긴장의 연속인 하루하루에 점심 먹으러 나갈 정신력마저 고갈되었다. 한 번 연구실을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오는 것이 버거워 대충 연구실에서 해결하는 게 더 편했다. 이제 내 연구실이라는 내 공간이 있고, 한국은 배달이 천국인 곳이니 온갖 것들을 배달시킬 수가 있었지만, 왠지 나의 선택은 그때도 김밥인 날이 많았다. 심지어, 어느 날은 김밥이 먹고 싶어졌다. 김밥이 '땡기는' 취향이 생긴 것이 좀 어이가 없었지만, 살다 보니 어느새 김밥이라는 것은 특별한 날 먹거나 할 수 없이 먹는 것이 아닌 '아는 맛'으로 굳어져 있었다.


김밥을 처음 만들어 본 것은 내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다.

요리와 인연이 없는 내가 의욕에 차서 시작했으나 6시간쯤 걸려 겨우 결과물이 나온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김밥은 들어간 재료들이 모두 버썩 말라있고 김이 밥에서부터 튕겨져 나오려는 그런 반항적인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들어가는 노동량, 공정이 상당한 음식이다. 만만치가 않은 음식이다. 그동안 김밥이 어떻게 4000원이나 한단 말인가 불평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김밥을 어떻게 4000원만 받고 팔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한 줄에 만원은 받아야 되는 음식 같다. 서민음식이라니 가당치가 않다. 서민음식의 의미가 '서민이 만들어 귀족에게 바치는 음식'이 아니고서야 온갖 재료를 손질해 따로 준비해야 하고 모양 잡아 써는 공정까지 있는 김밥이 서민음식인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유구한 세월 김밥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왔으나, 김밥에 대해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재작년에 이민을 왔다.

아시안이 많이 없어 한국가게가 변변치 않은 이곳에서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을 때면, 내 삶에 구멍 뚫린 부분들, 나에게 없는 것들이 선명해진다.

나는 열렬하게 바랐던 것, 이렇게까지 과분할 일인가 싶은 몇몇의 것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간절히 바랐던 결정적인 것,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많은 것이 없다. 다만, 그중 하나가 김밥이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일 뿐.


그러던 중 트레이더 조에 김밥이 풀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미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김밥 오픈런을 한다는, 품절 대란으로 한국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한 명에 두 개씩밖에 팔지 않는다는, 이게 정말 김밥 얘기인가 싶은 그런 기사들.  여기 있는 트레이더 조에서는 그렇게까지 유난 부리지 않아도 운 좋은 날에는 살 수 있었다.


어제 나의 유쾌한 로라와 함께 트레이더 조에 갔다.

오! 그날이구나. 트레이더 조에 김밥 있는 날.

김밥칸에 한 3/4쯤은 이미 팔려 비어있다. 좀 많이 사가볼까, 그래도 될까, 약간 갈등하고 있는데, 나의 유쾌한 로라가 그런다. '다 사버리자'. '아니 이걸 다 집어가는 건 좀 창피하니까'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이미 냉동고에 몸이 반도 넘게 들어가 있다. ‘너 열개,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다 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아있던 16개의 김밥을 카트에 수북이 담았다. 이건 혹시 진상은 아닐까 하다가, 아니야 훔쳐오는 것도 아니고  이럴 수도 있지 하는 맘으로 애써 떳떳하게.

 

트레이더 조의 김밥은 건강하지만 맹맹한 맛이다. 단무지가 없다.

포장지에는 김치나 고추장을 곁들여 먹으라는 상품에 대한 이해 전무한 디렉션이 버젓이 쓰여있다.

그렇지만 예상외로 훌륭하다. 일단 냉동된 김밥을 데워먹는 거 자체가 성공이다. 밥의 질도, 재료들의 질도 그리 후지지 않다. 냉동고를 가득 채워 넣고, 요보 이거 가끔 점심으로 가지고 가자 했더니, 요보는 이 귀한 걸 점심으로 허비할 수는 없단다.  


화창하고 밝았던 날 운수가 대통하여 김밥을 열여섯 개 집어 나오면서 김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좋은 날의 상징 같던 것, 바쁜 일상에 최소한의 끼니가 되어 주었지만 한없이 지겨워진 것, 그리고 나니 익숙해져 더 좋은 것이 있는데도 가끔 먹고 싶던 것,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어 냉동된 것이라도 쟁여놓는 것.   

같은 것인데도 내 삶에 이렇게 의미가 달라져 가는 것이 김밥 말고도 또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변화에는 시간이 관여한다. 나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 무엇을 바꾸었는지, 이렇게 드문드문 보이는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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