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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Feb 03. 2024

부부싸움 단상

드물게 조용히 끝난 싸움 후

나는 남편에게 언제 가장 화가 나는가.


생각해 보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가장 화가 난다. 나는 남편이 가진 네모 딱지가 싫다고 몇 번을 말했다. 너무 각이 진 것도 싫고, 너무 빳빳한 것도 싫고, 심지어 네모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고 했다. 남편은 알았다 네모 딱지는 던지지 않겠다 약속했다. 그 후 남편이 동그라미 딱지를 던지면 좋겠는 상황에서 분명 네모 딱지를 던질 것 같아 불안한데 기어이 또 네모가 날아올 때, 그럴 때 정말 화가 난다. 내가 네모를 싫어한다는 거 자체를 무시하는 거야.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 비슷한 말이지만, 뭐 이런 생각으로 화가 난다.


제발 그러지 말라 신신당부한 것이 있다.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싸우기도 했고 설득하기도 했는데 남편은 말끔히 고쳐주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열흘도 안돼 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일단 서슬 퍼렇게 공격을 시도했다. 남편은 나의 오해라 하고, 나는 내 오해가 아니라 네 실수라고 한다. 한참을 그러다가 그가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한다.  

"예전부터 너한테 화가 나고 실망한 마음이 한편에 있었어. 그 감정이 너무 복잡할 때가 있어. 네가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이 나온 건 그것 때문일지도 몰라.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야."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았었는데, 그 앞에서부터 이어진 말을 듣고 나니 치밀어 올랐던 울화 중 7할 정도가 가라앉았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 처음으로 믿어진다.

그래도 이유가 있었구나. 나한테 실망하고 화가 났었구나.

기어코 네모딱지를 던지게 된 이유가 적어도 아무 생각이 없어 그런 건 아니었다. 딱지를 던지기 전 이미 그 패를 던질 손에 관절염 정도는 있었던 거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훨씬 괜찮아진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날아드는 네모를 계속 잘 참아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네모를 싫어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다. 그러니, 관절염이 나을 때까지 딱지놀이를 하지 않거나, 관절염이 치료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돕거나, 그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긴 해야 할 것 같다. 딱지놀이의 주최자가 내가 아닌 것도 문제고, 관절염도 내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안되는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 내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딴에는 매우 좋은 사람이 될 만한 일을 해내어도 별로 감동하지 않는다는 약간의 반전이 있을 뿐이다. 나는 또 하도 사회에서 그런 일을 많이 당하고 살았다 보니, 애를 쓰고 진심을 다했는데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울화가 있다. 사회에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남편에게는 공치사를 바란다. 내가 이만큼 했다. 나로서는 정말 할 만큼 한 거다. 그러니 잊지 말아라.

이건 내가 가진 관절염 중 하나다. 이것 때문에, 나도 딱지를 고를 때 오류가 나곤 한다.


누구도 상대방을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미워해도 그렇다.

부부가 하는 딱지놀이에서는 정말 싫어하는 패가 날아올 때, 때마다 반응하지 말고 그냥 한두 번 정도는 넘어가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아직 그 훈련법은 모른다. 전혀 말이다. 세상 모든 부부 중 모르는 부부가 더 많다는 것에 무엇인가 귀한 걸 걸고 싶은데, 이 순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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