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우리 세대의 이름이다.
으레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라면 학창 시절 축구에 열광하며 자라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다만 나는 스펀지밥에 버금가는 운동신경을 소유한 관계로 직접 축구를 뛰진 못했고, 대신 열심히 손과 입을 놀렸다. 축구게임으로 무릎 꿇린 숙적들만 운동장 두 바퀴… 가 되지는 않지만 아무튼 나쁘진 않았다. '아갈메시'라는 천박한 별명은 그 시절의 빛나는 훈장이었다. 그렇게 설치고 다니던 와중에도 미래 진학할 학교를 예견하듯 홍대병에 걸렸던지라 메이저한 팀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응원한 팀은 이탈리아의 AS로마라는, 다들 이름은 알지만 딱 그 정도에 그치는 작은 팀이었다. 한 때 의리 넘치는 선수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나이가 들며 나는 축구에 관심이 사라졌다. 축구게임은 열심히 했지만 게임의 이데아라고도 할 수 있는 현실의 축구는 잊어버린 셈이다. 공부도 해야 했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허탈감이었다. 원래 스포츠라는 것은 연고지끼리의 대리전 성격을 띠는데, 대한민국 강화도의 내가 이탈리아 로마에 어떤 연고가 있다고 응원한단 말인가? 반대로 로마 사람들이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 중 누가 잠실의 주인인지 토론한다면 묘한 감정이 들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나는 축구를 끊었고 덩달아 삶의 열정 한 구석도 사그라졌다.
그러다가 손흥민의 첫 우승이 걸린 경기가 지난 새벽에 펼쳐졌다. 어린 날을 회상하며 나는 이른 4시에 일어났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지난날의 열정이 날 전율시켰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응원팀보다도 손흥민에 더 관심갖지 않았던가? 나조차도 그를 놀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응원하게 되더라. 이래나 저래나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으니까. 양 팀의 경기력 자체는 오물향이 물씬 날 정도로 저질의 그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진 않았다. UFC보다는 초딩싸움이 더 재미나듯. 경기는 그렇게 끝나고 손흥민이 트로피를 들며 아침은 밝아왔다. 비록 희멀건한 구름이 꼈음에 얼마나 찬란하던지.
피 끓던 소년이 이제는 젊음의 끝자락에 섰다. 당신이 울 때 나도 울었고 당신이 웃을 때 나도 웃었다. 같은 시간을 우리는 살았고, 나는 당신에게 많은 빚을 졌다. 추억 속의 영원한 우상이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축복이다. 박지성이 그러하였듯 손흥민은 우리 세대의 이름이다. 만고 끝에 이뤄진 그의 염원을 위해 조촐한 잔을 든다. 청춘으로 타오른 시대의 횃불이 이 밤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