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애착을 가지면 물건에 혼이 깃드는지 알 것도 같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주인이 너무 애착을 많이 가진 물건에는 혼이 깃든다는 이야기. 가령 버려진 인형이나 거울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괴담은 이제는 진부한 클리셰다. 그리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내게도 혼이 깃들만한 물건이 있다. 아니, 어떻게든 혼을 씌우고만 싶은 물건이 있다. 바로 내 만년필이다.
모름지기 위대한 영웅들은 자신만의 무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충무공의 장검, 관우의 청룡언월도, 아킬레우스의 방패 등. 굳이 살인무기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디지 길레스피의 꺾인 트럼펫, 김광석의 하모니카, 게바라의 베레모, 돈키호테의 로시난테, 니체의 콧수염... 예시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업적이나 예술성을 표출하는 수단이 시간이 흐르며 끝끝내 상징으로 자리 잡는 모습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그리고 이렇게 예시가 많다면 나와 내 만년필 역시도 하나의 역사 속 예시가 되어보고자 함은 철없는 야심일까.
이 만년필을 받은 지는 3년이 좀 넘었다. 성인이 되는 생일날에 받았으니까. 나는 원래 부모님께 선물을 요청하는 성격이 아니다. 얼추 초등학교 저학년 언저리를 벗어난 이후로는 케잌을 제외하면 특별히 받은 기억은 없다. 그러나 왜인지 이 해에는 유독 선물을 받고 싶었다. 성인이 되는 해이자 대학교에 입학하는 해이기도 했다. 마침 생월이 2월인지라 시기도 나름 절묘했다. 그렇게 나는 생일 전날에 만년필을 손에 쥐었다. 내 미성년의 마지막 날과 성년의 첫날을 장식한 내 만년필. 그럴싸하게 표현하자면 내 소년시절의 피날레이자 성년시절의 오버츄어. 비싼 만년필은 아닌 것 같지만 가격이야 중요한가. 능력 없는 대학생이 가슴팍에 몽블랑을 꽂고 다니는 것도 일종의 코메디다.
녀석을 손에 쥔 이후로는 참 끈질기게도 썼다. 우선 대학에 입학하고서부터 종강 후 본가로 내려가는 날까지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술에 젖어 들어오는 날에도 어지간하면 쓰고자 했으니. 시간이 흘러 군대에 있을 적에도 항상 우측 가슴주머니에 만년필을 꽂고 다녔다. 항상 날 지켜주는 부적의 의미였다. 부대에서의 마지막 날 후임들을 위한 편지를 이 만년필로 썼다. 다들 잘 살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고 전역 후 떠난 일본에까지 나는 이 만년필을 가져갔다. 내 첫 해외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여행 중 나는 교토의 윤동주 시인의 비석을 방문했다. 그의 하숙방 - <쉽게 씌어진 시>에 등장하는 육첩방 - 이 있던 자리였다. 푸르다 못해 쨍한 하늘 아래에서 공기는 살갑게 찼다. 시인이 거닐던 길목에서 나는 감상에 빠졌다. 80년 전 이곳에서 밤비는 왜 그리 얄궂게도 속살거렸는가? 그의 영원한 슬픔에 복은 있는가? 나는 그의 비에 시집과 함께 만년필을 올리고 기도했다. 수난당한 시인의 영전에 만년필을 바치는 행위는 딴에는 디아스포라 속 신심을 간직한 유태인의 알레고리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나의 성경이며 만년필은 나의 십자가다.
만년필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용자의 습관에 맞추어 필감이 변화한다. 펜촉 끝에 붙은 이리듐이 깎이며 각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이 필기구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물리적인 매력이 이런 점이라면 정신적인 매력도 있다. 내가 작가를 지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글쓰기를 즐거워하지 않는가. 글을 쓴다는 행위란 곧 사유를 물질로, 형상을 현상으로 옮기는 행위이다. 가지계에서 가시계로의 변환. 이 변환의 매개체가 바로 만년필이다. 이 얼마나 관능적인가.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만년필에다가 고뇌의 메타포, 관념의 페르소나, 사유의 모뉴먼트 뭐 이런 온갖 현학적 이름을 붙이며 호들갑을 떨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자제해야 한다. 만용에 휘둘려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인자은측 조차불리 仁慈隱惻 造次弗離'라는 천자문의 어느 구절을 내 만년필의 필훈으로 삼았다. 이 글이 의미하듯 사람을 잊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그냥 그런 마음이다.
적다 보니 문득 내 만년필이 몹시도 사랑스러워진다. 흐린 창문 너머로 초승달이 쓸쓸하게 걸려있다. 서늘한 밤공기 속 나는 방구석에 호젓하게 앉아있다. 나는 만년필을 거머쥐고 밤에 젖은 도시를 지켜본다. 이런 순간이면 이 넓은 세계에서 유리되어 오직 나 홀로서만 존재한다는 기묘한 감각이 든다. 혼자이기에 역설적으로 마음이 벅차온다. 새벽이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사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영원할 또 하나의 친구와 한 줄 글을 적을 뿐이다. 왜 애착을 가지면 물건에 혼이 깃드는지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