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기

남도기행 - 上

행여 우연처럼 찾아온 삶의 파편에 나는 실존을 느낀다.

by 박제원

군에서 풀려난 지도 어언 5달, 내 새로이 시작된 젊은 날도 종강을 맞이하면서 하나의 방점을 찍었다. 따분했던 공부는 6월 21일, 즉 오늘 오전부로 잠시나마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는 삶의 어떤 방향을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나는 멀리 떠나왔다. 지금의 이 상태로 방학에 돌입하였다가는 어느 것도 정리가 안된 채 긴장된 몸과 마음으로 인하여 자칫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낼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혼자서 여행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로망이었다. 원래부터 수동적인 성격인지라 남과 여행하면 줄곧 따라다니기 일쑤기에, 주체적인 무언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홀로 여행하는 일이 로망이었듯, 무계획 여행 역시 내게 또 다른 로망이었다. 내가 무계획을 소망한 이유는 무계획이란 곧 우연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 독자 제현께서는 다들 이런 상상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것이라 믿는다. 상상의 공간은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로 밤하늘이 장엄하게 덮인 가을날을 상정한다. 밤하늘이란 원체 공상의 원천이기에 홀로 서있는 당신도 깊은 상념에 잠기운다. 귀뚜라미는 울고 가을밤의 서늘한 바람이 귓볼을 스친다. 이제는 낯설어진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당신은 생각한다. 가령 우리의 우주가 먼지와 가스로 이루어졌을 뿐인 허무한 세계라면, 내지는 스피노자가 말했던 우리를 연쇄적인 인과에 종속시키는 범신론적 세계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얼마만큼 적으냐'라고 모래며 나무에게 하염없이 물어봐야만 하는가? 우리는 모래 한 알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인가? 하지만 이렇게 자아의 왜소함을 천명하는 사람치고 유쾌한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유쾌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상상의 끝에서 다다른 결론은 결국, 인간을 믿고 자유의지를 믿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 확실한 점은, 우리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연을 믿는 태도를 견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연의 존재는 곧 결정론의 오류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일을 우연으로 믿고 싶다. 행여 우연처럼 찾아온 삶의 파편에 나는 실존을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우연을 발견하고자 이렇게 발을 옮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오로지 내려가는 표만 준비하고 그 어떤 계획도 짜지 않은 채로 여행을 떠나왔다. 21일 11시에 학교에서 교양시험이 끝났다. 시험장에 여행가방을 들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정작 시험과 관련한 물품은 볼펜과 컴퓨터용 싸인펜만 하나 챙긴 채로. 나는 학교 앞 라멘집 '하카타 분코'에서 라멘을 대충 먹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용산역은 영등포역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 영등포역이 좀 더 날 것의, 그렇기에 더 솔직한 인간군상이 모여있다면 용산역은 좀 더 정제된 분위기다. 하지만 그게 더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홍대에서 밥 먹고 대충 준비하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13시에서 14시 언저리였다. 무거운 가방을 걸머지고 지상역사로 올라온 나는 발견했다. 뽀로로 옷을 입고 얼굴에마저 뽀로로 분장을 한 어느 남성을! 그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킨 채로 어느 기둥 뒤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있었다. 사실 뭐 이 정도까지였다면 나는 생각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마냥 희귀한 사건도 아니고. 그러나 내가 집중한 부분은 예상 못한 그의 다른 모습이었다. 5분 정도 춤을 추더니 갑자기 방송을 끄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현듯 몇 달 전 목격한 어떤 장면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스터디카페를 향하여 영등포역 지상역사를 지나고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사람이 붐볐다. 많은 사람이 모인 역은 늘 그렇듯 불쾌했다. 그리고 나는 계단에서 어느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계단을 뒤로 내려가는 어떤 아저씨였다. 어설프고 위태로운 발걸음이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안 그래도 혼잡스러운 역은 혼잡이라기보다도 혼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지경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진짜 뭐 하는 새끼지?' 분노보다는 황당한 마음이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알았다. 흔히 십자인대를 다친 사람들이 계단을 뒤로 내려간다는 것을. 악의를 가진 이는 그 아저씨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섣불리 사람을 미워했을까? 사연 없는 무덤은 없고 모든 행동들에는 딴의 이유가 있으리라는 사실이 그제서야 와닿았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 경구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모쪼록 용산의 뽀로로 형님도, 영등포의 문워크 형님도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소박히 바랄 뿐이다.


무대책 여행이라는 말처럼 나는 기차도 입석으로 타고 갔다. 표를 너무 늦게 예매해 버렸다. 목적지는 광주송정역이었다. 왜 광주인가? 내가 태어난 곳이 우선은 광주다. 그러나 너무 어린 시절에 떠나온 관계로 기억이 없다. 사실상 광주는 내게 연고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 강화도가 내 고향인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일단 부모님부터가 그곳에서 이방인이셨고, 내 강화도에서의 첫 기억 역시 낯설고 두려운 기억뿐이었기에 (당연히 그때는 광주의 기억이 있었겠다. 기억은 연속적인 것이니) 자연 내 무의식 속에서 강화도 역시 타지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정서적 실향민이다. 그렇기에 내 의식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순례자의 기분으로 나는 기차에 올랐다.


나는 가방에 이문구 작가의 <관촌수필>,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그리고 성경을 챙겼다. 딱히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나는 입석 자리에 선 채로 <관촌수필> 속 <일락서산>과 <화무십일>을 다 읽었다. 창 밖으로 펼쳐진 푸른 벌판이 마치 소설의 실재를 의미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작품이니 언젠가의 우리네 모습이었겠지. 아무튼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5시간만 잔 채로 시험을 치르고 또 두 시간 동안 서서 책을 봤으니 당연한 이치다. 이렇게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어떤 아저씨가 간이석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참 고마운 분이다. 또 한 번은 아빠의 품에 안긴 어떤 아기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포근한 기억이다. 이런 게 또 여행의 맛이요 우연의 맛이 아니겠는가. 열차는 그렇게 달려 광주에 다다랐다.


해는 산 너머로 사라져 어둠이 쏟아지는 가운데 광주역에 내리니 매서운 비가 쏟아졌다. 몰랐는데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나. 나는 비도 피하고 계획도 생각해 볼 겸 역전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어느 동네에 가던 항상 똑같은 맛을 보장하는 프랜차이즈 식당들의 보편화가 우리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진지한 문제다. 당을 보충하는 초콜릿 음료수를 마신 나는 우선 어느 모텔에 짐을 풀었다. 쉬고 싶었지만 배를 채워야 했기에 역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니 유명한 떡갈비 집들이 널려있었다. 골목의 아무 데나 들어가서 떡갈비 정식을 시켰다. 떡갈비 하면 역시 부대에서 먹던 '치즈함박스테이크'가 기억난다. 하지만 이와는 역시 차원이 다른 말이었다. 비교는 실례다. 그야말로 떡갈비라는 음식의 재발견이었다. 음식을 남기는 일은 죄악이라 믿는 나는 '전라도 밥상'을 앉은자리에서 말 그대로 싹 다 비웠다. (물론 절대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간혹 부대에서 싸가지 없는 메뉴가 나오면 일말의 자비 없이 갖다 버리고는 했다.)


배를 채우니 밤은 깊었고 계속 내린 비로 인하여 공기는 찼다. 남은 여행을 위해 나는 일단 쉬기로 하고 소주 한 병과 소시지 한 팩을 사고 방으로 들어와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내일은 어디를 가야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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