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기

남도기행 - 下

이제는 알콜 중독자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by 박제원

이튿날은 순천으로 갔다. 내가 가려고 하는 순천은 과연 어떤 동네인가?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환상의 도시? 철새가 쉬어가는 갈대의 고장? 내게 있어 순천이란 어느 연고도 없는 영 생경한 지방이었다. 활자는 추상적 관념 그 이상을 사람에게 심어줄 수 없는 법이다. 책 몇 권에서 언급됐다고 내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는 없다. 사실 견문이 좁은 나한테 전국의 그 어느 도시가 살갑게 다가오겠냐마는.

아무튼 우선 아침에 일어난 나는 광주 송정역 앞의 어느 국밥집에서 모둠국밥을 먹었다. 인터넷에 소개되는 만큼 맛있는지는 영 모르겠다. 아무튼 대충 배를 채우고 난 후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산한 서울 외곽 내지는 경기도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어느 지역에서도 특색을 찾아볼 수 없는 오늘이다. 버스에서 눈을 좀 붙이고 나니 순천국가정원이라는 곳에 다다랐다.

그래도 이쁘긴 하다

전편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무계획으로 여행을 떠나왔기에 모든 일정은 즉흥적으로 짜여졌다. 나는 생각 없이 유명하다길래 국가정원이라는 곳에 왔다. 관광지로서 아쉬울 구석 없는 훌륭한 곳이었다. 드넓은 정원에 꽃이 만발하여 나는 계절을 착각했다. 화려한 색채를 가졌음에도 은은하고 수수한 자태를 가진 어여쁜 꽃들. '화려'라는 단어와 '수수'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공존이 가능했던가? 이렇듯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은 완벽한 듯했으나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바로 내가 꽃구경에 흥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넓은 정원을 돌아다니던 중 나는 미니 동물원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다람쥐원숭이, 미어캣, 사막여우, 이구아나, 홍학, 거북이 등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슬픈 프레리독. 이 친구는 내가 구경하는 내내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생물학에는 영 연이 없는지라 잘 모르는데, 과연 이 서러운 멍 때림은 이 동물의 생태일까, 아니면 부자유의 서러운 체화일까? 고루한 논쟁을 다시 한번 꺼내보자면, 야생의 위험 속에서 자유와 죽음이 공존하는 삶이 옳은가, 아니면 동물원의 구경거리로서 속박된 안락을 누리는 삶이 옳은가? 내 잡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과거 인간동물원이나 원주민 보호구역 등 문명의 만행에서부터 미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소외가 예정된 우리 인간의 운명, 혹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으로 흘러가려 했으나 나는 생각을 멈췄다. 과도한 생각은 맑은 정신에 좋지 않다.

국가정원 구경은 이 정도만 하고 나는 순천만 습지로 넘어갔다. '스카이캡슐'이라는 물건을 타면 5분 만에 습지로 넘어갈 수 있더라. 우선 나는 거기에 있는 김승옥 문학관에 방문했다. 내가 순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이었으니 꼭 들러야만 하는 장소였다. 문학관에는 자료 몇 점과 그의 일대기 등이 남아있었다. 간혹 김승옥 작가님께서 이 근처에 오시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으나 오늘은 안 계셨다. 연로하셨으니...

아무튼, 문학관 구경마저 마친 나는 습지로 향했다. 순천만의 낙조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인터넷에서 그랬으니, 한번 보고 갈 작정으로 이곳에 왔다. 그러나 비가 온 다음날이라 습지는 축축했고(당연한 말인가?) 날씨가 너무 불쾌했다. 6월이라 갈대도 그리 볼품 있지 않았다. 나는 일몰을 기다렸다가 전망대로 향했다. 낮은 산 중턱에 있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사실 좀 힘들었다. 전망대에 올랐으나, 비가 와서 습지에 물이 너무 많이 찼고, 날벌레가 들끓었다. 태양의 각도 역시 아쉬웠다. 가을에 왔어야 했는데.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일몰이었다. 일몰을 찍고 산을 내려가서 습지를 지나가는데, 오히려 일몰이 지나간 직후의 하늘이 더 아름다웠다. 노을 머금은 구름이 수놓인 하늘은 수줍게 그 빛깔을 붉혔다. 이게 회광반조라는 것일까? 매섭게 내리쬐던 하루가 끝나가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아련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 한의 정서가 있듯이 일문학에는 부서지는 것의 아름다움, '모모노아와레'라는 정서가 있다. 흩날리는 벚꽃이라든가 끝나가는 여름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그런 정서.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나는 습지에서 빠져나와 바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는 길에, 갑자기 자기가 찍은 일몰사진을 보여주겠다며 나보고 핸드폰 갤러리를 뒤져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몇몇 사진을 봐버렸는데, 기사님의 따님 사진이 있었다. 해가 져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도로를 가르는 기사님의 피곤한 주행은 부성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는 여행이 끝나자마자 본가에 들르기로 결심했다.

살을 찢어서 주시더라

숙소를 잡고 짐을 던져둔 후 어느 통닭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온 집이란다. 오랜 걸음으로 몸은 피곤했고 혼자 하는 여행이 낯선 나머지 마음은 권태로웠다. 배는 비었다. 우울한 기분을 술로 달램은 알콜 중독자의 체념과 무력에서 비롯되는 습성인 줄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울적한 상태에서 통닭을 뜯으며 마신 소맥은 가히 황홀함 그 자체였으니, 이로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제는 알콜 중독자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였다. 나는 행복하다.


통닭을 뜯고 들어와 11시에 잠든 나는 10시간을 내리 잤다. 중용이라는 단어를 공자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무수한 현자들이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 많이 자면 오히려 피곤하다. 하지만, 뭐 만성피로는 현대인의 훈장이니, 나는 갈 길을 갔다.


나는 강진으로 향하여 외조부모님을 뵈었다. 거의 7년 만이었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너무 오랜만에 뵙는지라 연로하신 티가 났기에 슬펐다.


두 분을 뵙고 나니 피곤을 어찌할 수가 없어 나는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여행의 감동은 피로와 권태에 찌들어 퇴색되었고 나는 휴식을 간절히 원했다. 우선 KTX를 타기 위하여 나는 나주로 향했다. 햇살은 심하게 뜨거웠고 사람은 없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채로 짐가방을 들고 부랑하던 나는 길 위로 아득히 깔린 적막 너머로 어떤 생각을 했었던가?

다행히 표는 있었기에, 던킨도너츠에서 대충 요기를 하고 좌석에 앉은 나는 책을 꺼내 들었다. 늦은 오후의 태양이 차 안을 비추는 가운데 창 밖으로 <관촌수필>의 잃어버린 우리네 역사는 아스라이 스쳐갔다. 귓가에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 흘러나왔다. 기차는 나를 태우고 서울로 달렸다. 시골 논밭이 어느새 도시의 빌딩과 한강으로 바뀌는 광경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이번에는 잡념에 내 의식을 맡겨보았다. 으레 철도란 도시화의 심볼이다. 보통은 거기서 더 나아가 식민주의와 착취, 억압을 은유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백 년의 고독>에서 기차가 마꼰도에 재앙을 불러온 것처럼. 네이티브 아메리칸(소위 인디언)들은 철도를 대지의 상처로 부르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화 시대 철도 옆 오막살이는 한강의 상처 정도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아. 하지만 이 문명의 이기에 혜택을 받기만 한 내가 어떤 자격으로 이렇네 저렇네 할 수 있을까?


기차는 그렇게 날 서울로 데려다 놓았다. 여행은 끝났고 방학이 시작됐다. 자.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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