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기

여름

뫼르소가 한국인이었으면 4발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

by 박제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보면 주인공 뫼르소가 이방인을 총으로 쏘는 장면이 나온다. 살인의 동기는 중요하지 않기에 작가는 그저 지중해의 햇살로 눈을 찔러 그의 불쾌한 감정을 묘사한 후 즉흥적으로 발포시켰다. 즉 뫼르소의 총기난사는 까뮈의 철학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자. 만약 <이방인>의 배경이 2025년 대한민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뫼르소는 따사로운 지중해의 햇빛임에도 4발을 쐈다. 작열하는 태양과 가공할 습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기후였다면 아마 뫼르소는 이 치 떨리는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애꿎은 아랍인을 향해 탄창의 총알 우상탄 10발을 싸그리 비울 정도로 갈겨버렸으리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며, 나는 이를 명증하게 증명해 낼 수 있다. 이 미친 더위라는 부조리에 대해 반항하는 방법은 분노의 무제한적 표출, 혹은 더위가 없는 곳으로의 도피밖에 없다. 이 나라의 날씨는 미쳤다.


나는 일찍이 봄에 대해 쓴 글에서 뭐 청춘이니 아쉬움이니 하며 쓴 적이 있다. 봄에 가지는 감정이 그렇게 감성적인 것이라면 여름에 가지는 감정이란 오로지 분노밖에 없다. 뭐 사람들은 여름감성이니 추억이니 말하는데 나는 원체 더위에 약한지라 실외에 있으면 반쯤 블랙아웃 상태에 빠진다. 그런지라 여름의 추억이란 땡볕 아래에 있다가 에어컨을 쬐러 급하게 들어왔을 때의 쾌감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그런 추억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여름이란 더위와 습도, 땀, 벌레, 장마 등 안 좋은 단어들의 총체다. 나는 성인도 군자도 아닌지라 이런 환경이면 마음 속 도덕률은 커녕 기초적인 에티켓조차 지키기 힘들다. 건강하지 못한 육체에서 정신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


역시 군필이라면 여름의 군대 에피소드가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4월 군번인지라 훈련소니 특기학교니 수료하고 나니 6월 중순이었다. 부대는 산골짜기였다. 맙소사. 선임들은 득시글거리는데 미친 반장은(공군 포대에서는 한 보직을 이끄는 간부를 반장이라고 불렀다.) 제초 시즌이라고 우리를 낫을 들고 제초를 하게끔 만들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나는 낫을 만져본 적조차 없는데. 심지어 제초장소조차 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건물 뒤편 이중 철조망 사이 심하게 가파른 언덕이었다. 한번 미끄러지면 어디 몸 성하기 힘든 그런 경사였다. 아, 지금도 그걸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군번이 꼬여서 막내생활은 10월까지 이어졌다. 2023년의 여름을 난 잊을 수 없겠지. 그리고 한 번은 우천으로 한 달 동안 못 비운 쓰레기장을 비운 적도 있었다. 나는 한국에 그렇게 다양한 벌레들이 서식한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으으... 군대에서 여름의 막내란 이렇듯 많은 함의를 지닌다.


너무 징징댔나? 육군이나 해병대 등 다른 군종에 비하면 꿀을 빤 것도 엄연한 사실인지라 군대이야기로는 이제 그만 하소연하자.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름이 싫다는 말 뿐이다. 작가 피천득은 5월을 보고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썼다. 7월이나 8월은 아마 '잔뜩 심술이 나서 시뻘게진 얼굴로 입술을 깨무는 미운 네 살 남자아이의 얼굴'이라고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미운 네 살은 물리력을 수반한 이성적이고 합당한 훈육을 통해 교화할 수 있지만, 여름의 햇살은 도피를 제외한 그 어떤 수단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릴 무력하게 만든다. 모든 고통의 본질은 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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