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기

열도기행

좋은 게 좋은 것이다.

by 박제원

생전 해외를 다녀본 적 없던 내가 피치 못하게 이번 해에 2번이나 비행기를 탔다. 심지어 행선지는 두 번 다 일본의 오사카. 일전에 밝힌 바 있던 내 수동적인 성격이 이런 식으로 날 새로운 우연으로 끌어들였다.


제목은 기행이지만 딱히 내 여행의 기억을 시시콜콜하게 적을 생각은 없다.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능력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내 비루한 기억력으로는 그저 매 순간 뇌리에 박힌 인상만이 떠오를 뿐, 자세한 일정은 영 떠오르질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늘 써왔던 것처럼 이성보다는 감성에, 논리보다는 감정에 의거한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훌륭한 경구를 나는 충실히 따랐기에 몇 번의 터치만으로 나는 언제든지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2월의 찬 공기도, 8월의 습한 공기도 사진 속에서 나를 향해 생생히 불어온다. 미래의 그 어느 날에도 오늘의 바람이 내 곁을 스치도록 많은 사진을 남겨놓아야지.


첫 일본은 군 전역 직후 2월에 갔다 왔다. 4박 5일간의 대장정. 애초에 비행기를 타는 자체가 7살 이후 처음이었던지라 새벽의 공항은 내게 혼돈 그 자체로 다가왔다. 심지어 환전도 까먹고 안 해버려서 아침부터 온종일 뛰어다녔다. 어벙한 친구를 둔 내 붕우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바다.


비행기가 날아오를 때의 기분은 차마 티를 못 냈지만 무척이나 놀라웠고, 처음으로 밟은 해외의 감촉도 퍽 신기했다. 사실 오사카야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지라 리무진버스를 비롯한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와 이때까지는 그리 두렵진 않았다. 차라리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기나긴 길을 도보로 해결하기로 했다는 우리의 결정을 두려워해야 옳았다. 단화를 신고 가방을 든 채 걸어서 1시간을 걸었더니 꽤나 힘겨웠다. 뭐, 고생을 사는 게 젊음의 여행 아니겠는가.


숙소는 관광지에서 거리가 꽤나 있었던지라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티비에서부터 숙소 프런트의 직원, 자전거를 타고 애기들을 등교시켜 주는 현실의 봉미선들, 그리고 왼편으로 걷는 사람들.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옛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 언어를 잃은 내 세계는 한없이 좁아졌다.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고독했을 테다. 내 옆에 드리운 나의 한계. 적막. 불안. 이런 게 여행의 즐거움일까. (물론 비트겐슈타인 씨가 이런 의미로 저 말을 한 건 아니다.)


둘째 날은 오사카성도 갔다 오고 현지인 식당이나 이런저런 관광지들을 많이 들렀다. 정석적인 관광을 즐긴지라 낮에는 진짜 사색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밤에 들린 로컬 술집에서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저씨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30년 전 즈음에 한국에서 무역 일을 하셨다고. 전역한 지 2주 언저리 된 내게 축하의 말씀까지 해주셨다. 정말 좋은 분이셨다. 외국에 나오면 진짜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3명이서 뜨거운 사케 12병을 나누어 마셨다.


셋째 날은 고베와 야키니꾸집을 갔지만 이렇다 할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사진이기에 이렇게 올린다.


여행 내내 우리는 어느 한 식당에 계속 들렀다. 야요이 켄이라는 이름의 식당인데 한국의 김밥천국보다 살짝 고급화된 분위기를 풍겼다. 정겨웠다. 일본의 그 어느 음식보다도 나는 600엔짜리 규동을 좋아했다.


넷째 날에 우린 각자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합의했기에, 나는 교토로 향했다. 이미 쓴 바 있지만, 80년 전 시대에 스러져 간 시인의 발자취를 나는 쫓고자 했다. 교토에는 <쉽게 씌어진 시>를 쓴 하숙방과 그가 다녔던 대학교가 있다. 정지용 시인도 같은 대학교에 재학하신 바가 있다.


일전에 썼듯이, 만년필을 그의 영전에 올리는 나만의 의식을 거행했다. 언젠가는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리고 내 꿈을 키운 그를 향한 커다란 동경이 있다. 나는 그를 위해 성호를 그었다. 그의 하숙집 앞에서의 하늘은 쨍하게 푸르렀으나 도시샤 대학교에서는 희뿌연 구름이 머리 위를 덮었다.


마지막 날은 교토의 청수사와 금각사를 갔다. 일본의 어떤 옛 문인은 금각을 미 그 자체로서 숭상하였다. 나도 살다 보면 어느 날에는 눈앞에 금각이 나타날 듯하다.


그렇게 내 첫 해외여행을 마무리하고 복학 후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다시 한번 오사카를 갈 일이 생겼다. 친구들의 제의가 들어왔는데 너무 생각 없이 간다고 해 버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사실 여름 여행의 경우 일본의 가공할 날씨에 출국 전부터 지레 겁먹어버린 탓으로 관광보다는 미식과 휴양에 중점을 둔 밤의 여행으로 우리는 계획을 짰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그리하여 첫날에는 애초에 점심식사 후 숙소에 들리자마자 한숨 잔 후에 술집을 찾아갔다. 오코노미야끼를 파는 술집이었다. 아주머니께서도 정겨우셨고, 싸움을 몹시 잘하게 생기신 아저씨께서도 덩치에 맞지 않는 귀여움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는 여기서 부어라 마시고서는 다음날에도 들리기로 약속했다.


애기신발 ㅎㅎ. 내 손보다 작다

둘째 날은 쇼핑만 다녔다. 나는 쇼핑과 영 맞지 않는 체력을 가졌다. 운동의 체력과 쇼핑의 체력은 별개다. 그래도 돈키호테에서는 꽤 오래 쇼핑했다. 한국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여따가 내 얼굴사진을 올려도 되나 고민해봤는데 애초에 인스타도 연결해놨는데 괜찮지 않을까??

전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같은 술집에 또 들렀다. 체력의 빈곤함으로 그렇게 부어라 마시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노력은 했다. 이틀 사이에 너무나 정이 들었다.


짧은 여행을 끝으로 우리는 한국으로 향했다. 나는 별다른 미련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이별의 감정이란 늘 애틋한 것이어서 언제나 나는 미련을 품고 살기 일쑤였다. 비감한 심사는 내 삶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련이 없더라. 이별과 만남이 동의어임을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성장한 건지 노화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오는 길에 찍은 하트구름. 사랑하면 하트지.

여행하며 다행히도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행뿐만이 아니다. 나는 내 삶에서 언제나 좋은 사람들만을 만나왔다. 풍족한 인복은 내 자랑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일본인에 대한 악마화에 노출되며 살아왔다. 시대가 바뀌었는지 요즘에는 중국인에 대한 악마화가 진행 중인 듯하다. 경멸스러운 이데올로기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그렇게 깊게 파고드는 최인훈 작가도 언제나 글의 말미에서는 사랑을 찾는다. 이해와 사랑은 고루한 키워드인 듯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우리가 그리워하는 낱말들이다. 하늘에 별이 뜨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


아무튼 즐거운 시간을 난 살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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