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기

참회록

만 22년 2개월을 무슨 결백을 바라 살아왔던가?

by 박제원

인간은 자신과 닮은 인간을 혐오한다.


정언명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보편적인 명제다. 이는 내가 여태껏 만나온 사람들에게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명제가 발견된 근원은 내 자신이다. 과연 어떻게 이런 명제가 도출되었는가? 지난 새벽, 홀로 상념에 잠겨있다가 문득 내가 지금껏 미워한 사람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그리도 미워했을까. 우선 나는 찐따같은 사람을 미워했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에게서 내 성격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욕과 폭언을 일삼는 권위적인 사람을 미워했다. 그러나 그건 내심 그 사람의 마음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나는 싸가지 없는 사람을 미워했다. 그러나 그건 거기에 내 지난날의 행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리바리한 사람을 미워했다. 그러나 그건 내 힘든 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미워한 대상은 악도 아니고 불의도 아닌, 그저 나였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믿음은 착각이었나? 정녕 인간은 자신과 닮은 인간을 미워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미워해온 이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여워해야만 했다. 아, 그래서는 안 됐는데. 그리하여 처음의 명제는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부정해 왔던가?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아니, 나는 솔직해져야 한다.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그것이 내 모습이라면 외면해서는 안된다. 나를 부정하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일 때에만 내 행위의 지침이 선다. 지침은 간단하다. 첫 번째로, 그 어떤 고리대금업자 노파에게도 도끼를 휘둘러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그 어떤 간음한 여인에게도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죄는 저질러서도 망각해서도 안된다는, 결코 지켜질 수 없던 당연한 윤리다. 지침을 받든 나는 새삼 깨닫는다. 내 머릿속을 스치던 온갖 생각과 마구 휘두르던 혀끝이 누구에게는 도끼였으며 누구에게는 돌이었음을. 불현듯 지난날이 창피해진다.


그래도 솔직해지니까 이제서야 눈이 트인다. 자, 그러면 내일을 위한 출사표를 던져볼까. 나는 당당하게 살겠다. 다시는 나를 부정하지 않겠다. 사람을 사랑하겠다. 이 얼마나 당연한 말들이냐.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다. 고뇌 끝에 이룩한 이 굳고 맑은 마음은 결코 새벽 2시의 약속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오로지 경건한 삶의 방향으로서만 날 이끌어야 한다. 그러면 이제 나는 尹의 詩를 빌려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2년 2개월을 무슨 결백을 바라 살아왔던가?


부끄러운 고백으로 세운 추론의 결론은 결국 이렇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경구는 우리의 영원한 정언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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