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기

눈비 흩날려 땅 위에 흐드러지게 번진 벚꽃을 기리며 나는 쓴다.

by 박제원

겨울에 속아 꽃은 폈다. 여전히 나부끼는 눈은 봄을 부정한다. 어쩌면 눈꽃이라는 단어는 비유를 위한 단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김영랑 시인이 애타게 기다렸던 '찬란한 슬픔의 봄'이 이렇게 우리 앞에 펼쳐졌다. 눈비 흩날려 땅 위에 흐드러지게 번진 벚꽃을 기리며 나는 쓴다.


봄은 내게 그다지 특별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봄이면 신학기의 시작인지라 학급의 분위기에 녹아들기 바빠서 정신이 없었던 듯하다. 기껏해야 수험생 시절에 동네 뒷산으로 새벽나들이를 즐긴 기억 정도? 그런가 하면 대학에 와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해 방에서만 숨죽여 살았고, 판데믹이 종식되자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결국 봄은 여느 사람들에게 처럼 설렘이나 희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절망이나 아쉬움 내지는 그마저도 없이 무심한 마음만을 내게 남겨주었다. 차라리 꽃이나 푸른 잔디보다는 봄비가 나의 봄을 이루는 주된 심상임이 분명하다. 가령 입대하는 날에는 이슬비가 내렸다. 혹은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봄날에 서늘한 빗속에서 혼자 우산을 쓰고 오르막길을 오르던 기억이 이유 모르게 떠오른다. 정녕 나는 꽃보다 비를 더 사랑하는 성정을 가지고 태어났는가? 그리하여 봄보다 겨울을 더 사랑할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왜 봄이 내게 그 어떤 인상도 심어주질 못했는지 고심해 보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태까지 그 어떤 것에도 온전히 집중해 본 기억이 없다. 그것이 학문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여지껏 나의 세계관이란 나 아니면 남으로 이뤄진 이원적 시공간(말만 그럴싸하지, 참 싸가지없기 그지없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닌 하찮은 것이었고 인생관이란 될 대로 되라는 정도의 시시한 것이었다. 삶에 굴곡이 없으니 어떤 감동도 허락될 수 없었고 오로지 공허한 마음으로만 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내게 무엇이 주어졌겠는가? 만약 원수를 미워할 수만 있다면 죽을 힘을 바쳐 온몸으로 증오하겠다. 사람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바쳐 온몸으로 사랑하겠다.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곧 청춘이며 봄은 청춘의 것이다. 언제라도 내게 청춘이 온다면 만일 궂은 비가 올지언정 그 비는 꽃처럼 찬란하라.


4월의 때아닌 눈과 매서운 비에도 꽃은 아직 남아있다. 끝까지 봄을 지켜낸 꽃이 참 예쁘다. 서럽게 스러져간 꽃이 더없이 아련하다. 그리고 꽃잎 떨어진 데 자라날 푸른 잎새가 너무나 애석하다. 꽃을 잊은 잎새가 자라나며 봄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피어날 꽃을 기다리며 추억처럼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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