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파멸의 역사

인류를 위기를 몰아넣는 위험한 생각들

by 박카스

버트런드 러셀 -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10장 파멸의 역사 : 인류를 위기를 몰아넣는 위험한 생각들




「10장 파멸의 역사 : 인류를 위기를 몰아넣는 위험한 생각들」에서 러셀은 인간의 불행 중 상당 부분이 이제는 자연 환경이 아닌 인간끼리의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이해하지 못하면 타인의 악의나 음모 때문이라고 믿으며, 이런 심리가 미신, 마녀사냥, 외국에 대한 공포, 국수주의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는 질투, 경제적 오해, 국가 간 경쟁이 전쟁과 빈곤, 문명의 파괴를 일으킨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한 국가의 번영이 다른 국가의 손해라고 여기는 경제적 국수주의는 근거 없는 믿음이며, 이는 협력보다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국가, 인종, 성별, 계급, 종교에 대한 우월감이 위험한 신념을 낳아,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해 왔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신의 뜻을 수행하는 도구라고 믿는 종교적·정치적 광신은 역사적으로 큰 재앙을 초래해 왔다.


러셀은 민주주의조차도 맹목적으로 믿으면 해로울 수 있다고 말하며, 민주주의는 법의 통치, 합리적인 절차, 그리고 국민의 성숙한 자세 위에 설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파멸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라고 결론짓는다. 하나는 전쟁을 막고 협력을 촉진할 조직적 시스템, 다른 하나는 자비와 관용 같은 도덕적 자질이다. 그는 이것이 과격한 이념이나 광신이 아닌,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불행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인간적인 환경으로 겪는 불행, 둘째는 다른 사람들이 가하는 불행이다. 인류의 지식과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두 번째 불행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P.245)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불행이 누군가의 의도 없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사악하지 않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의 불행은 누군가의 악의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는다. 즉 어떤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라 순수한 증오로 우리를 해치려는 누군가 때문에 이런 불행이 닥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 상태가 악마학과 마녀와 흑마법에 대한 믿음을 낳았다. (...)


과학이 자연의 인과관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마술에 대한 믿음을 버렸지만, 그러한 믿음을 낳게 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감정은 오늘날 다른 국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배출구를 찾는다. 나는 이 배출구가 미신의 뒷받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P.245)


잘못된 신념의 가장 강력한 근원 중 하나는 질투이다. (...)


우리가 질투에 취약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행한 결과 중 하나는 경제적 자기 이익에 대한 개인과 국가 모두가 완전히 그릇된 인식을 갖는다는 점이다. (...)


모든 국가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이 다른 모든 국가의 이익과 대립한다고 확신하며, 다른 국가들이 빈곤에 빠지면 자국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


오늘날 보편화된 국구주의 무역은 한 국가의 경제적 이익이 다른 국가의 이익과 필연적으로 대립된다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이 잘못된 믿음은 국가 간 증오와 경쟁을 야기함으로써 전쟁의 원인이 되며, 이런 방식으로 진실성을 입증하는 경향이 있다. (...)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철강 산업에 종사하는 누군가에게 다른 국가가 번영해야 당신에게도 유리하다고 설명하려 한다면, 그는 그 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또렷하게 인식하는 유일한 외국인은 철강 산업계에서 일하는 경쟁자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른 외국인은 감정적으로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희미한 존재들이다.


이것이 국수주의 경제와 전쟁과 인간이 만든 굶주림과, 우리 문명을 처참하고 수치스러운 종말로 이끌 다른 모든 악의 심리적 근원이다. 우리가 상호관계에 대해 더 넓고 덜 신경질적인 시각을 갖지 않는 한 말이다. (P.254~257)


정치적으로 해로운 거짓 믿음을 낳는 또 다른 열정은 국가, 인종, 성별, 계급, 신념에 대한 자만심이다. (...)


국가적 자만심보다 훨씬 더 해로운 것이 인종적 자만심이다. (...)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적이 없다. 그 믿음이 끈질기게 지속되는 곳에서 그 우월성에 근거가 되는 것은 군사적 우위이다. (...) 오늘날 서양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진 남성 우월성에 대한 믿음은 교만이라는 죄악의 흥미로운 예이다. (...) 과거에는 남성 태아는 6주 후에 영혼을 얻지만, 여성 태아는 3개월 지나야 영혼을 얻는다고 여겨졌다. 이 견해 역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이후 폐기되었다. (P.257~261)


다른 우월성은 계급의 우월성인데 (...) 계급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직도 멀었다. (...) 부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현실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P.262)


이와 비슷한 감정의 변종이 종교적 신념이다. (...) 개인이나 국가가 똑같이 빠질 수 있는 망상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해로운 것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특별한 도구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침략했을 때 하느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것은 그들이었지, (...)


로마 역시 신들에게 세계 정복을 부여받은 나라였으며, 이 또한 ‘실제 자료’로 발견된 사실이다. 뒤이어 등장한 이슬람도 참된 신앙을 위해 전투에서 죽는 모든 군인이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는 광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


코롬웰은 자신이 가톨릭과 왕당파를 제압하기 위해 신이 지명한 정의의 도구라고 확신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시인 존 스콰이어 경이 남긴 불멸의 시구를 살펴보자.

독일인은 하느님 왕국을 멸하소서,

영국인은 하느님 왕을 지켜주소서,

이쪽도 하느님, 저쪽도 하느님,

정작 하느님은 따로 계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네.

‘아이고, 하느님, 나는 이제 할 일이 없구나.’ (P.263~266)


공적인 삶에서나 사적인 삶에서나 중요한 것은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 가정하는 일이 아니라, 관용과 친절함이다. (P.267)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도 다른 믿음과 마찬가지로 광적인 수준이 되면 해로울 수 있다. 민주주의자는 다수가 항상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고 믿을 필요가 없다. 그가 믿어야 하는 것은 현명하든 그렇지 않든 다수결에 따른 결정은 다수가 다른 결정을 내릴 때까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평범한 사람의 지혜라는 신비로운 개념이 아니라, 자의적인 힘의 통치 대신 법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실용적 도구로 믿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항상 어디서나 최선의 체제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


민주주의자의 일반적인 목표는 무력에 의한 통치를 전체 합의에 의한 통치로 대체하는 것이지만, 그러려면 국민들이 특정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이 거의 비슷한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의 목을 조르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 보자, 절반보다 조금 적은 편은 다른 편의 지배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은 편도 승리를 거둔 순간 양쪽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절제력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직이다. 즉 전쟁을 없애기 위한 정치 조직, 사람들이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경제 조직(특히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가들에서), 건전한 국제주의를 형성하는 교육 조직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특정한 도덕적 자질이다. 이는 오랫동안 도덕주의자들이 주장해 왔지만 지금까지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중 필요한 자질인 자비와 관용은 갖가지 과격한 주의(ism)로 우리에게 제시되는 광적인 신념이 아니다. (P.26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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