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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배운 한국인의 사랑

by 박카스

학창 시절 황순원의 ‘소나기’, 피천득의 ‘인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같은 감성적인 작품들이 교과서에 있었다.


당시 나는 ‘소나기’를 으며 순수한 첫사랑을 꿈꿨다.

소년과의 추억을 죽어서도 함께 하고파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하던 소녀의 순수함이, "자기가 죽으면 소년을 함께 묻어달라"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순수와 공포는 한 끗 차이란 걸 배웠다.


‘인연’에서는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구절에서 누구나 마음속에 한 명쯤의 ‘아사코’를 품고 살아가며 첫사랑은 그저 첫사랑으로 간직해야 함을 배웠다.


‘운수 좋은 날’에서는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불멸의 진리와 함께, 좋은 일이 생길 땐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완벽한 하루가 된다는 걸 배웠다.


교과서에서 읽은 이런 작품들이 나의 청소년기 사랑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 바탕이 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사랑이란 단순히 감정의 교류나 성적인 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모든 사랑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았습니다'라고 끝맺는 전래동화가 될 수는 없다. 때로는 헤어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상처 없이 헤어지는 방법을 찾는다면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상처를 최소화하고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며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헤어짐은 아프고 힘들지만, 그것이 성장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헤어짐을 지나친 분노나 증오의 감정으로 치닫지 않고, 서로의 길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태주 시인도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주말에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30대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던, 하지만 많은 여운을 남겨준 책이다. 50대가 된 지금, 이제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출처 :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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