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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Sep 03. 2018

사진

삶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에 영원한것은 영원함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치만, 분명한건 삶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은 계속 되어야 하지만, 그 계속의 끝에 영생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영원하지 않음은 집착을 수반한다. 더 오래 기억하고 싶고, 더 많이 보고싶고 느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의 역사속에서 인류는 존재한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다.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일분일초가 그러하다. 되돌아 간다해도 지금 순간이 반복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순간이 한번 뿐이기에 소중하다. 한순간 한순간을 쉬이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유다. 


문명이 가져다 준 수많은 혜택중에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봤다. 전기, 에어컨, 인터넷, 티비, 휴대폰, 컴퓨터 등등 너무나 많은것이 우리의 삶은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큰 풍요로움을 주는것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아련함이다. 사람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좋은 기억이다.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과 공간, 동생과 함께 뛰어놀던 그 모습, 피 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나에게 존재 이유를 주는 친구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설령 그 기억이 즐겁지 않았더라도 나를 설명하는 내 유한한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마냥 버려 둘 수만은 없다. 


사진. 그래서 내가 사진에게 늘 감사한다. 단 한순간이라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만족시켜준다. 가을하늘의 청명한 푸르름도 , 여름의 찌는듯한 청록도 사진안에서는 살아있다. 내가 더워했던 그 시절 여름도 살아있고, 빡빡머리 학창시절도 사진안에서는 생동하고 있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없었으면 또 다른방법의 기록방법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기에 사진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나는 사진을 못 찍는다. 많이 찍어보지도 않았거니와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훈련도 부족하다. 그래도 새로운곳에 가면 늘상 그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미각을 사진으로 담아 기운을 살린다. 훗날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그래서 좋다. 사진을 잘 찍고 싶어했던 내가 생각난다. 작은 화면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려 하던 내 노력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그 당시 공기와 함께한 이의 체온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주변에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이 찍는 사진을 보는것도 좋아한다. 같은 사물을 보고, 풍경을 경험하더라도 보는 사람마다 그 따스함을 다르다. 9월의 가을 하늘이지만, 어떤이는 떨어짐을 준비하는 마지막 청록을 쓸쓸하게 담는다. 또 어떤이는 늦 여름을 기다리는 황혼의 설렘을 담은 가로수 잎을 담아낸다. 이렇듯 각자의 시선으로 같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다. 사진이 기계의 힘을 빌린 작업이 아닌, 고도의 예술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해결하기 어려운 욕망을 구현해주는 사진. 사진은 작은 결과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 결과물이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가지는 연속성은 위대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화면 어딘가에 들어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나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보고 행복해 하는것. 그냥 사진을 보고 상념에 잠기는것. 이것이 어떻게 이상주의자만 가질 수 있는 호사라 할 수 있겠는가? 영원하지 않은 삶을 영원하게 만들어주는 사진이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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