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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Nov 22. 2018

세탁소

혼자 객지 생활을 하려면 편의시설이 좋은곳에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 당장 생각나는 편의 시설은 마트, 식당, 세탁소 등이 있다.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큰 요소는 세탁소이다. 정갈하게 다려진 흰 셔츠를 입으면 기분이 좋고, 숨이 살아있는 수트를 입고 나가면 기분이 좋다. 물론 소소한 빨래야 내가 홀로 처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혼자임에도 깔끔하게 지내려다 보니 세탁소는 매우 중요한 거래처가 되었다. 

셔츠를 혼자 다림질 하는 부지런함도 없거니와 돈이 좀 들더라도 나름의 품위유지라고 생각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편이다. 


동네에 세탁소에 처음 옷을 가져다 줄때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무심한듯 귀찮은듯 '네' '네' 만 연신 반복하셨다. 몸이 불편하신 아저씨를 대신해서 세탁소를 운영하시는 아주머니가 바쁘다 보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래도 난 항상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감사하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서로 기분이 좋으면 좋을거란 생각과 더불어서 실제로 난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다. 


몇개월 지났을까? 약 반년정도 지났는데도 단골이라면 단골인데 너무 무뚝뚝했다. 그래서 원래 그러신가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대가를 바라고 인사를 드리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진 이틀에 한번 꼴로 보는 사이인데 서로 밝은 얼굴로 인사하면 좀 더 활기차 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 이었다. 


어느날 셔츠를 받아오며 나도 모르게 바쁜 마음이 있었던 터라 돈만 주고 나가던 찰나였다. '총각, 여기 거스름돈' . 처음 말했던 금액을 맞춰서 드렸는데 거스름돈이라니 의아했다. 오랜 다림질로 굳은살 투성이신 손으로 천원을 주시는게 아닌가. '아주머니, 제가 돈 딱 맞춰 드렸는데요?' .  말이 끝나길 무섭게 작은 미소와 함께 '천원은 할인이여' . 얼떨결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두번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딸랑딸랑, 수백개의 세탁물에 희미해지는 입구 종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몇일동안 아주머니의 웃음이 계속 떠올랐다. 무뚝뚝하시다 못해 내가 뭘 잘못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숙한 표정이셨던 아주머니께서 꼬깃꼬깃 건네신 천원이 너무 낯설었다. 그날 이후로 아주머니는 나보다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매번 천원을 깎아주시며 두런두런 말씀도 하신다. 나 또한 밝은 미소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제 세탁소는 작은 이웃이 되었고 내 일상의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우리가 타인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줄 의무는 없다. 특히나 공자는 대가를 바라는 '위하여'라는 호의가 관계를 퇴색시킨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남을 맞춰주려는 과도함과, 대가를 바라는 친절을 삶을 오히려 퇴보시킨다는 것에 나도 동의 한다. 그렇지만 친절과 감사의 마음 그 자체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회사든, 학교든, 교우관계든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조금씩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씨는 1+1=2 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좋은 방법이다.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주고 향기가 되어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거쳐가는 공간이 여러모로 기쁨의 순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보다 즐겁고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다. 훗날 살아온 세월을 반추할때 진정 기억에 남는것은 시간속에 있는 순간이 아닌, 시간속에 삶은 마주하던 나 스스로일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더 깊이 마주할 수 있다. 남은 남임과 동시에 나 또한 누군가의 남일 수 있기때문이다. 


노래 가사나 작은 습작속에서나 나올법한 동네 세탁소를 오가며 나는 2018년에 기억된 내 모습을 남겨둘 수 있었다. 세탁소 아주머니의 미소와 더불어 삶의 순간은 풍요로워 졌다. 앞으로도 이 마음, 기분을 기억하며 되도록이면 좋은 순간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날들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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