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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Feb 11. 2019

근거 없는 자신감

  맑은 정신은 좀더 나은 판단으로 이끌어 준다. 선택의 연속인 삶 속에서 명확하고 정확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만날때도 판단이 필요하며, 직장을 선택할때도 판단이 필요하고 심지어 음식 메뉴를 고를때도 적절한 선택이 필요하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할 근거와 논리가 필요하고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가 적절해야 한다.


논리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릴적 부터 많은것을 배우고 훈련한다. 논술을 통해서 논리력을 검증받고 얼마나 합리적으로 생각하는지  평가받는다. 합리적인 훈련은 교육시장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회사에 와도 합리적인 생각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가지는 필수덕목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한해 두해 살다보니 이성적이라는 말이 마냥 모든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는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이성보다는 때론 비이성적인 행동이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성과 합리를 추앙하는 사람들에게 비이성적인 행동은 바보이며 모자라고 경솔한 사람이라는 인상만 줄 뿐이다.


"생각한다. 고로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이성이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데카르트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지켜봤던 그는 인간의 이성이야 말로 가장 큰 진리이며 이를 통해서 세상이라는 큰 지도를 증명하려 했다. 철저한 이성에 기반한 데카르트는 근대를 넘어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도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되었다.


감히, 데카르트라는 천재가 주장하던 이성의 중요성과 필수성을 내가 부인하려 하는가? 데카르트가 주장한 이성은 단순히 논리적인 영역이나 증명의 방법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사색한다' 라는 행위 자체를 통해서 이성을 이야기 했다. 내가 이야기 하는 비이성이라 함은 생각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아닌, 생각을 하긴 하지만 때로는 설명이 어려운 사항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성과 합리라는 나르시스즘에 빠진 사람을 종종 보게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을 모든게 논리적으로 설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꼭 이유를 항목으로 나열하며 하나의 연역으로 결과를 도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그런 훈련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때론 너무 피곤하게 삶을 사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드는건 사실이다.


상쾌한 바람을 마주할때, 혹은 차가운 공기가 뼛속까지 스며들때 느끼는 감정들이 이끌어 내는 행동은 합리성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생각해도 될것 같다. 이유를 굳이 찾지 않고 , 삶과 세계라는 큰 틀에서 나 자신을 자연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필요할때가 있지는 않을까. 사람사이에 합리적인 논리로 상대방과 교감을 하기보단, 때론 무모하더라도 끌림 그 자체로 서로에게 배려와 존중을 실현 할 수 는 없는 것일까?


어찌보면, 똑똑함과 합리적인 것을 지나치게 최고의 가치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회에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내가 가지는 나름의 정신승리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믿고 싶은것이 있으며, 무릎을 탁 치게 설명이 불가능 하더라도 진심인 경우를 믿고 싶다. 그게 설령 나에대한 타인의 평가를 낮추더라도 말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것들은 이성과 합리의 틀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인 케인즈도 '비이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가지는 중요성을 인정했으니

나 또한 가끔씩은 너무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세상을 대면하는 자세를 가져볼까 싶다.


문득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던 친구와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넌 A를 왜 그렇게 싫어하니? 너한테 뭘 잘못하기라도 했니?"

"아니. 그냥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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