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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Oct 28. 2015

추억저장법

추억도 저장이 되나요?

학생, 회사원, 너나 할 것없이 USB는 생활에 중요한 편의를 가져다 준다. 비단 USB뿐만 아니라, 수많은 저장 매체들은 우리가 평소에 작업해 놓은 수많은 결과물을 언제든지 꺼내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컴퓨터가 인류의 삶에 지대한 진보를 가져옴과 동시에 , 저장장치의 발전은 모든 면에서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도록 해 줬다. 꺼내쓰고, 다시 집어넣고, 보관하고 , 또 다시 그때의 것을 꺼내고 고치고.. 참으로 편리한 도구임에 틀림 없다.


컴퓨터는 이렇게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할까? 이를 테면 , 1998년 당시의 생생한 모습과 느낌을 17년이 흐른 지금 꺼 내어 볼 수 있을까. 사진이 있다면 좋겠지만, 사진으로 표현 할 수 없는 느낌을 꺼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복고열풍이 한창이다. 작년 예전 90년대 가요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트렌드를 몰고온 이후 음악적인 복고는 여전히 방송가에서 괜찮은 소재거리가 되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 했는가. 음악적인 완성도나 기술, 그리고 가수들의 실력은 지금도 진배없거나 더 발전 되었을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인간도 삶 속에서 컴퓨터의 USB와 같은 시간탐험 매개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 영어로는 MUSIC.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으면 한 노래를 골라서 백번정도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다. 음악이 내 취향에서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일단 한번 듣기 시작한 노래는 백번정도 듣는다. 지겨울 정도로 듣는 이유는 , 나만의 시간탐험 USB를 만들기 위함이다. 계속해서 들으면 , 이제는 그 노래는 훗날 들었을때 당시의 상황과 느낌 그리고 심지어 공기의 냄새까지도 나에게 선사해 준다. 물론 ,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뇌의 신호이겠지만 그래도 환각작용 인 마냥 향수에 젖게 된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시간을 멈춘듯 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교를 처음 올라와서 ,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촌놈이 서울중심부에서 텅텅빈 하숙집에 덩그러니 앉아 16기가 MP3속의 노래를 하염없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친구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할거라곤 그 음악을 주구장창 듣는 수 밖에 없었다. 서울 생활을 한지 십년이 넘은 어느날 버스안에서 그 당시 내가 지겹도록 들었던 음악이 나왔다. 당시의 처음 보는 대학이라는 모습이 떠오르고, 2월 입학전의 쌀쌀한 서울하숙방의 느낌이 고스란히 뼈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나만이 경험 할 수 있는 시간탐험의 환상인 셈이었다.


이렇게 특이해진 나만의 추억저장법은 이제 제법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다. 수첩에 하나 둘씩 적혀 있는 노래를 굳이 내가 틀지 않아도, 지나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만으로 나는 수십년을 왔다 갔다 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리워 하기도 하며, 사랑스러워 지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한 이 모든 추억저장을 꺼내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가 아닌, 나에게도 USB같은 추억저장소가 생겼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파일을 편집하기 위해 USB에 있는 파일을 꺼내 조정하하는 것이 아니다. 난 그냥 그 당시로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만을 위해 추억속의 저장소를 꺼내어 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라는 퓨쉬킨의 시를 뚫어지게 보던 방황하던 학창시절도 , 이제는 하나의 음악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오게 되었다. 나만의 추억저장법,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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