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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Nov 10. 2015

예의 없는 사회

'쿨함'이 왜곡되고 진지함이 사라진 곳.

 '쿨함'이 왜곡되고 진지함이 사라진 사회            

진지함이 사라졌다.

진지함보다는 가볍고, 쿨함(답답하지 않고 시원시원함)이 각광받는 세상이다.

쿨한 사람은 언제나 멋지다.

죽마고우라면 욕설도 거침없이 하며, 인격 모독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의 공유를 확인하는 방법이 되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핀잔 일쑤다.

'선비질' '허세'로 매도되는 진지한 이야기와 표현들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소위 말하는 '쿨'함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봄 직한 순간이다.

때론 진심이 진심으로 따뜻하게 전해지는 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이 위트와 재치를 겸비한 표현이 가지는 통찰력을 놓친다.

되레 껍데기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소통의 과정에서 진지함이 배척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네'라는 말이 있다.

진심으로 걱정 어린 충고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진의를 무시하며 비아냥거릴 때 하는 표현이다.

웃자고 한 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본 원칙이 있어야 한다.

표현은 가벼운 수사로 했지만, 근저에는 존중의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상호 간 비방일 뿐이다.

그럼에도 비아냥거리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

"혼자 정의의 사도인 척하지 마. 누구나 다 알고 있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개개의 기품은 작은 표현과 생각에서 부터 우러나온다.

지나친 훈계로 가르치려 드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안에 대해서 '쿨함'이라는 왜곡된 인식 속에서 가벼이 이야기하려는 태도는 조심해야 한다.

물론 가볍게 이야기하고 표현이 거칠다고 해서 생각이 가볍거나 저급한 건 아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습관이 들다 보면 결정적 순간에 진중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릴 수 있다.

진정성으로 진실됨을 표현해야 할 때 부지불식간 막막함에 직면해 곤란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조금만 진지하게 말하거나 바른 이야기를 하면 고리타분하다며 대화하기를 꺼려하는 것이 결코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윤리 책에 나오는 기초적인 의식조차 무너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진중함을

가벼이 대하는 분위기가 너무 만연해 있다. 나 또한 일상 대화에서 은어나 욕을 쉽사리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

나쁜 습관임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고쳐야 할 부분임을 인정한다.

'바른 생활 청년'은 결코 조롱받을 일이 아니다. '바른 생활=고리타분, 허세, 멋있는 척'이라는 등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쿨함의 사용법을 고쳐야 한다. 재치와 위트는 깊은 통찰과 맑은 심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적재적소에 맞는 삶의 태도를 기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쿨함이 왜곡된 사회, 진지함이 사라진 사회는

반성이 없는 정체된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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