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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Nov 18. 2015

수저이론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가져야 할 화두

전 국민이 거의 최신형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외제차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고, 집 값는 사그러들 기미가 안 보인다. 주말에 조금만 번화가로 나가보면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하하호호 즐겁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은 3만불을 향해 치닫고 있다. (2015년 IMF 기준28,338$,1인당 GDP) 1인당으로 계산한 수치는 세계28위 수준에 해당한다. 전체 GDP로 경제규모를 따지면 2015년 IMF발표에 따라 세계11위나 된다. 작은 반도국가에서 이제는 어엿한 G20의장국도 했고, 스포츠 강국이며 , 한류라는 문화컨테츠로 세계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살기좋은 나라가 되었다. 점점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수준은 높아지는데 왜 정작 본인은 나아지지 못하는가 에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사람들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때아닌 수저이론이 화제다. 금수저(재력가에서 태어나, 먹고살 걱정 없는 사람), 은수저(재벌은 아니지만 상류층에 속하는 재력가 후손),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가진것도 없고 가난한 여건에서 태어난사람) . 이렇게 신종계급으로 우리 사회는 각자의 위치를 판단하고 이야기 하고 있다. 경제력에 따라서 삶의 수준이 차이가 나는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보이지 않는 계층적 경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적절한 비유를 가지고 온 표현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이유는 무엇 일까.


전형적인 운명결정론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리천장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 점점더 처음의 주어진 조건이 삶을 결정하게 된다는 참혹한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꽤 많은 부분에서 이런 상대적 박탈감과 운명결정론을 양산해 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라고 생각한다. 사회전반에 결정론적 인식이 확산될때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대한민국은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 '수저를 잘못 물었다' . 이런식의 사고를 하다보면 극단적으로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까지 치닫는 경우가 있다. 과연 올바른 것일까.


자존감은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이다. 자존감은 자신감과 다르다.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인정임과 더불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유기적인 사회나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국가가 자존감을 상실한 사회로 이행될때,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더욱 커지게 된다. 아무리 전체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된다. 상류사회에 대한 반목과 , 처한 현실에 대한 자존감 상실이 동반될때 우리사회는 성장 동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불행이 가득해 진다.


수저이론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 하기엔 실상이 너무 참담하다. 옛날에도 살기 힘들었지만, 그때는 모두가 다 같이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공동체적 협동이 가능했다. 함께 나눌 수 있었고,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같이 이겨내자는 '으쌰으쌰'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고생해도 , 행복함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괜히 수저이론이 나온게 아니다. 평등과 인성 그리고 예절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 져야 할 유치원때부터 우리는 섞이지 못한다. 함께 살아가야한 친구가 아닌, 어울리지 말아야 할 집단으로 나누어진다. 그렇게 각각의 집단은 배타적으로 교육받는다. 어울림이 아닌, 나만잘되면 된다. 라는 식의 사고가 그렇게 길러지다 보니 될놈만 계속 되고, 안될놈은 애초부터 시도조차 못할 운명이 되기도 한다. 참 슬픈 시대의 자화상이다.


응답하라 1998 시청률이 고공행진 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많은 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드라마를 통해서 재미와 공감 보다는, 현재 우리사회에 부족한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립고 , 더욱더 몰입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같다. 아무리 세계 강대국이 되어도, 함께 힘을 모으는 원동력이 없다면 사상누각이 된다. 국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수저이론이 정당화를 얻어가는 이때, 상생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당장 답을 찾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늘 생각하고 고심해야 할 화두임에는 틀림없다. 회복해야 할 가치, 그리고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반성과 자성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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